청량정사에서
산은
글을 읽지 않았지만
사람을 길러 냈다
송재의 가르침은
퇴계의 마음이 되었고
농암의 풍류는
강물 따라 시가 되었으며
그 길을 걸은 제자들은
한 시대를 일으켰다
푸른 산은 말이 없고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
사람은 떠나도
배움은
산처럼 이어진다.

산이 사람을 키우고, 사람이 시대를 만들다
- 청량정사(淸凉精舍)에서
청량산은 쉽게 마음을 열어 주는 산이 아니다.
겹겹의 기암이 하늘을 떠받치고, 절벽 아래로는 낙동강 물줄기가 굽이쳐 흐른다. 천년 고찰 청량사를 지나 가파른 돌길을 오르면 숲속에 작은 정사 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하지도, 넓지도 않은 청량정사(淸凉精舍). 그러나 그 소박한 마루에는 조선 성리학의 가장 깊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처음에는 퇴계 이황을 만나러 왔다. 그러나 정사에 오래 머물수록 깨닫게 된다. 이곳의 주인은 퇴계 한 사람이 아니었다. 퇴계의 숙부 송재 이우가 있었고, 농암 이현보가 있었으며, 금난수와 김성일, 류성룡, 정구가 있었다. 청량산은 한 사람의 은거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학문과 인품이 전해지던 거대한 인문 공동체였다.
모든 시작은 송재 이우에게서 비롯되었다.
청량정사는 본래 숙부 송재가 조카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작은 글방이었다. 어린 퇴계는 안동에서 오십 리 길을 걸어 이곳으로 올라왔다. 숙부는 글만 가르치지 않았다.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절개를, 계곡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을, 숲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퇴계의 학문은 책상보다 먼저 산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신을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불렀다. 산은 그에게 풍경이 아니라 가장 큰 스승이었다. 산을 내려오면 낙동강이 기다리고, 강가에는 농암 이현보가 있었다. 서른네 살의 나이 차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농암은 이미 영남 문단의 거목이었다. 강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풍류를 즐겼고, 《어부가》를 통해 자연 속에서 욕심을 비우는 삶을 노래했다. 퇴계는 그 곁에서 풍류를 배웠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농암이 자연을 노래했다면, 퇴계는 자연에서 진리를 읽었다.
같은 강물을 바라보았지만 한 사람은 풍류를 읊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학문을 닦았다. 두 사람의 길은 달랐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청량산은 그 만남을 이어 준 다리였다. 말년에 퇴계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1564년, 그는 제자와 벗 열여섯 명을 이끌고 청량산을 올랐다. 며칠 동안 함께 걷고, 함께 묵고, 함께 시를 읊으며 자연 속에서 삶을 나누었다.
그 가운데는 훗날 임진왜란을 이끌게 될 서애 류성룡이 있었고, 학봉 김성일이 있었으며, 한강 정구가 있었다. 또 청량산 아래 고산정을 지어 스승을 맞았던 금난수도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거목이 아니었다. 스승과 같은 길을 걷던 젊은 선비들이었다. 퇴계는 책보다 먼저 산을 읽게 했고, 글보다 먼저 사람을 배우게 했다. 청량정사의 좁은 마루는 강의실이 아니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배움의 자리였다. 퇴계가 사랑한 산은 그의 시조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푸른 산은 흔들리지 않는 지조를, 흐르는 물은 쉼 없는 배움을 말한다. 자연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평생 읽어야 할 스승이었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그치지 아니하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청산과 같이 하리라
청량정사는 한때 의병의 근거지가 되었고, 을미의병 때 일본군의 방화로 불타 사라졌다. 지금의 건물은 다시 세운 것이다. 그러나 건물은 사라질 수 있어도 사람은 남는다. 송재가 심은 씨앗은 퇴계를 키웠고, 퇴계는 다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농암의 풍류는 퇴계의 철학 속에서 더욱 깊어졌고, 그 정신은 다시 서애와 학봉, 정구를 거쳐 조선의 역사 속으로 흘러갔다.
청량산을 내려오며 생각과 느낌들을 정리해 보았다.
산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 침묵 속에서는 숙부의 가르침이 흐르고, 농암의 노래가 흐르고, 퇴계의 사색이 흐르고, 제자들의 젊은 꿈이 흐른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키우고,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일으킨다. 청량산이 위대한 이유는 봉우리가 높아서가 아니다. 사람을 품고, 사람을 이어 주고, 사람을 시대의 스승으로 길러 낸 산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