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뱀사골에서그림 속을 거닐고물소리에 젖었다 비가 지나간 월요일 아침, 지리산으로 들었다. 산길은 아직 젖어 있었다. 굽이마다 단풍이 다른 빛깔로 맞아주었고, 길 위의 낙엽들은 물기를 머금어 한층 짙었다. 한적한 길을 따라 마음도 느릿느릿 산으로 들어갔다. 정령치에 이르자 천지가 한 솥의 곰탕이었다. 하늘과 산도, 가까운 능선과 먼 봉우리도 희뿌연 안개에 풀어져 있었다. 산을 보러 왔는데 산이 보이지 않았다. 차창 너머를 바라보며 잠시 머물렀다. 무엇이든 또렷하게 보려 애쓰던 눈이 모처럼 쉴 자리를 얻었다. 뱀사골 쪽으로 내려서자 안개가 걷히며 단풍길이 열렸다. 노란 잎 사이로 붉은 잎이 타오르고, 아직 푸른 가지들이 그 불빛을 받치고 있었다. 비에 씻긴 가을은 맑고도 진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