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를 베다 — 대흥사 침계루에서돌다리는 둥근 귀를 열어가을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처마 아래 흰 붓끝이물소리 한 자락 끌어당긴다붓끝이 돌아앉은 자리마다돌을 넘는 물소리가 고이고가을 잎 하나 흘러와글씨의 품에서 붉게 잠든다글씨에 시내를 들이다단풍이 깊어진 대흥사를 밟았다. 숲길에서 따라오던 물소리가 침계루 앞에서 한결 또렷해진다.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시내를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처마 아래 흰 글씨 세 자가 눈에 들어온다. 원교 이광사의 ‘침계루(枕溪樓)’. 시내를 베개 삼는다는 이름이다. 물소리를 베고 눕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잠시 걸음을 멈추자 글씨의 획 사이로도 시냇물이 흐르는 듯하다.붓이 힘껏 내달린 자리에서는 여울 소리가 나고, 둥글게 돌아선 자리에는 작은 소가 고인다. 먹빛 바탕에 드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