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둔 자리가을빛이 차오르는 산기슭, 흙냄새와 바람 소리가 번지는 농원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삶을 채우는 일’보다 ‘남겨두는 일’의 귀함을 배우게 된다.얼마 전 참석했던 인문학 모임의 화두도 ‘남겨둠’이었다. 고전을 읽고 선현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오늘의 일상을 돌아보는 모임이다. 그날은 현역 시절에 삶을 다 누리며 소진하지 말고, 퇴직 후의 삶을 위해서도 얼마쯤 남겨두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음식에 빗대니 뜻이 한결 가까워졌다. 전채 요리로 배를 채우면 정작 주된 요리가 나왔을 때는 젓가락이 무거워진다. 후식의 향긋함까지 누리려면 다음 접시가 놓일 자리를 생각하며 먹어야 한다. 한 끼의 즐거움에도 여백이 필요한 셈이다.삶에도 아직 나오지 않은 음식이 있다.젊은 날에는 눈앞의 한 접시가 전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