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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에서

화진포에서 - 푸른 침묵의 노래호수는 바다에 안기고바다는 호수를 품어파도를 낮추는데굽이진 소나무 등걸마다세월이 가둔 숨비소리 낮게 깔린다남북의 발길이 머물던낡은 별장 위로바람은 경계 없이 드나들며명사십리 모래 위에덧없는 평화의 문장을 새긴다.비취빛 물결 아래다하지 못한 말들이조약돌처럼 다듬어지고긴장은 수심 속으로 가라앉았다.평화는 불완전한 약속흔들림 속에서 피는 꽃역사의 긴 그림자 위에내가 한가로이 서 있다.화진포는 지리적으로 북방 한계선과 가깝기에 느껴지는 그 특유의 무게감이 있네요.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저 투명한 바다와 고요한 호수를 보고 있으면, 이념보다 더 오래된 자연의 평화가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 주는 것 같습니다.

시나브로 05:12:15

우후죽순(雨後竹筍)

우후죽순(雨後竹筍)밤새 내린 비가대숲의 잠을 흔들어 깨웠다검은 흙을 뚫고 솟아오른대지의 송곳니, 죽순 하나하나가 깨어나자 열이 깨어나고열이 깨어나자 숲이 들썩인다땅속에 묻어둔 열망이일제히 터져 오르는 아침바람은 잎이 되기 전부터그 이름을 불러 주었고비는 떠나면서도등을 다독여 주었다구름을 향해 곧게 뻗은저 서슬 퍼런 기백높이 자라는 것은남들 위에 올라서는 일이 아니라어둠 속에서도제 길을 잃지 않는 것임을......비 갠 아침죽순 하나가 솟아오른 자리에서대숲의 미래가 숨을 쉰다

시나브로 2026.06.08

누정기행 13 고성 청간정(淸澗亭)

청간정설악의 뼈마디와동해의 살결이 맞닿는 곳푸른 파도 베고 누운신선의 정자청간천 여울목은제 몸 밀어 내려바다에 던지고짠 내음으로 노래한다절벽 끝 난간에 기대면솔바람 옷깃을 흔들고거친 수묵 한 획 번져겸재의 묵향이 바다 위에 젖는다산은 물로 흘러내리고물은 다시 바람이 되어여행자에게 속삭인다청간정은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지워지는 자리경계 위에 세운 마음동해는 오래 바라볼수록 사람을 낮아지게 만든다. 설악의 능선이 바다 쪽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자리, 그 끝에 청간정이 걸터앉아 있다.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정자 하나. 산과 바다와 인간의 시간을 한 화면 안에 겹쳐놓았다.정자로 오르는 길은 짧다. 하지만 시선은 오래 걸린다. 울창한 해송 숲이 펼쳐지고 멀리 파도가 금빛 모래를 어우러지고 동해의 수평선은 마치 ..

인문기행 2026.06.06

누정기행 12 괴산 고산정( 孤山亭)

고산정의 메아리괴강의 물결은 은빛으로 흘러제월대 바위에 노래로 부딪친다고산의 뜻은벼슬의 무게를 벗고산 하나를 높이로 삼았다.편액에 스민 풍류명나라 사신의 문향이바람결에 번진다벽초의 그림자잃어버린 언어들물소리에 잠겨 흐른다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라사람도 흐른다그러나 남는 것은세월을 건너온 정신흐름 위에 서 있는한 점의 높이고산정의 메아리다흐르는 것들 사이에 서서 - 孤山亭 답사 기행오월의 빛은 늘 조금 늦게 깊어진다. 제월대로 접어드는 길에서도 그랬다. 연둣빛이 막 지나 초록이 자리를 잡아가고, 물빛은 햇살을 받아 더 투명해지는 시기.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절벽 위 솔숲에 숨은 정자, 고산정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자를 머리에 인 제월대는 이름 그대로, 비 갠 뒤의 달빛 같은 맑음이 깃든 자리..

인문기행 2026.06.04

누정기행11 괴산 암서재(巖棲齋)

바위와 물에 새긴 뜻은 절벽 위의 작은 정사화양구곡 명당 자리바위에 새겨진 절개번개처럼 날카롭고물결에 비친 마음은가을물처럼 투명했다물은 아래로 흐르고뜻은 위로만 솟았다산은 뜻을 높이고물은 학문을 길렀다한나라 조정에 나가지 않고 (세속의 영달을 뒤로하고)험한 낭떠러지와 시냇가에 집을 지었네.뜻은 북쪽(임금이나 북벌의 의지)을 향해 있으나그 사이에서 고요히 앉아 명상에 잠기노라.지름길로 가려 하지 않고 매 순간을 정성껏 새기며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학문을 점검하며높은 곳을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가려 하노라.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이 암서재(巖棲齋)에서 머물며 남긴 친필 시구이다. 벼슬길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 속(암서재)으로 들어와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학문을 닦겠다는..

인문기행 2026.06.01

누정기행10 거창 용원정(龍源亭)

龍源亭 쌀다리를 건너며용원정에 닿으면물은 고요히 말을 삼키고나무는 그늘로 다가온다 천 석의 쌀을 비워돌다리 두 개 놓았으니굶주린 온기 흘러들어시간은 천년을 건넌다정자 천장엔두 마리 용이 얽혀 있고시선은 하늘로 끌리며생각은 땅으로 잠긴다비운 만큼 채워지는 건쌀독만이 아니었다물의 근원에서나눔은 뿌리 내렸다오늘도 쌀다리 아래가난한 이들의 고마움이푸른 이끼 되어 남아 있다용원정의 운을 뒤따라 짓다.깊은 못에 기러기 떠난 지 오래되어 속절없이 괴로운데찾는 이의 마음을 반겨주는 새로 지은 정자 하나 있구나경치를 감상하니 선조의 자취가 흐르는 물처럼 감돌고주위는 온통 물과 돌이요, 시렁에는 오직 책들만 가득하네거문고와 책을 벗 삼으며 타고온 말을 쉬게 하니한 번 바라봄에 가슴속이 시원하게 풀리는구나. // 안동 사람..

인문기행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