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의 노래
천 년의 바람이
절벽의 뼈를 드러낸 자리
굽은 소나무에서
동해의 먹내음이 난다
해풍에 닳은 바위는
오래 접힌 책장 같고
파도는 묵은 페이지를 넘기는 손처럼
천 년의 독서를 계속한다
의상대사 머물던 자리
말보다 깊은 침묵으로 남아
솔끝에 걸린 바람만 흔들린다
오늘의 낙산은
작은 화면에 갇힌 해돋이
바다의 노래에 기대어
저마다의 무게를 파도에 흘려보낸다
나 또한 벼랑 끝에 서서
다듬은 한 문장 바다에 던지고
푸른 여백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운다





의상대, 두 개의 길이 만나는 벼랑
의상대에 서자 가장 먼저 바람이 말을 걸어왔다.
바다는 오늘도 쉬지 않고 절벽 아래를 두드리고 있었다.
소나무는 오래된 수행자처럼 몸을 바다 쪽으로 기울인 채 서 있었다.
수백 년 해풍에 씻긴 등걸은 뒤틀렸으되 꺾이지 않았고, 바늘잎마다 짠 소금기와 푸른 묵향이 깊게 배어 있었다.
그 앞에 서니 이곳은 전망대 이상이다.
서로 다른 정신이 만나고 스쳐 간 거대한 사유의 자리였다.
의상대는 본래 불교의 공간이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인근의 낙산사와 홍련암 또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낙산(洛山)이라는 이름 역시 관세음보살이 머문다는 보타낙가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 벼랑 끝에는 처음부터 관세음의 정신이 스며 있었다.
관세음(觀世音).
세상의 소리를 듣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소리를 깊이 바라보는 존재.
절벽 아래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귀로 들으면 물소리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인간 세상의 번민과 슬픔을 품어 안는 자비의 음성처럼 들린다.
바다는 쉼 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다.
밀려왔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다.
의상대의 파도는 무상(無常)의 진리를 말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불교의 고요만 머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의상대는 또 하나의 정신을 품게 된다.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조선의 선비들이
이 절벽에 올라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뜻과 시대를 바다에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 동해는 절경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을 시험하는 거대한 거울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송강 정철이다.
그의 호방한 기상은 지금도 동해 수평선 위를 힘차게 가로지르는 듯하다.
관찰사였던 그에게 동해는 나라의 끝이자 장부의 가슴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의상대의 붉은 일출은 충정과 이상을 깨우는 북소리였고, 밀려오는 파도는 호연지기의 장중한 율격이었다.
반면 농암 김창협의 시선은 사뭇 달랐다.
그는 바다를 향해 기개를 외치기보다 파도가 씻고 간 바위의 결을 오래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바람이 남긴 침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같은 동해를 바라보면서도 한 사람은 시대를 노래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의 심연을 응시했다.
이 지점에서 의상대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본래 관세음의 자비와 비움을 품었던 불교의 공간이 조선 선비들의 수양과 성찰의 장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불교의 비움과 유교의 수양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닦고 삶의 중심을 세우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만난다.
의상대는 바로 그 두 길이 만나는 벼랑이다.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내려다본다.
스마트폰으로 풍경을 담는 여행객들 사이로 문득 갓을 쓴 옛 선비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오늘의 사람들은 풍경을 기록한다.
옛사람들은 풍경 속에 자신을 기록했다.
현대의 여행이 장면을 수집하는 일에 가깝다면,
옛 유람은 마음의 결을 가다듬는 수행에 가까웠다.
과거의 풍류만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의 사람들 또한 저마다의 상처와 번민을 안고 이 절벽에 오른다.
누군가는 무너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 위해 바다 앞에 선다.
천 년 전 의상대사가 들었던 해조음과 오늘 우리가 듣는 파도 소리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은 여전히 흔들리고, 또 그 흔들림을 견디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이 의상대 기둥과 소나무 껍질 위로 천천히 번져 갔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불교는 이 바다 앞에서 "비우라"고 말한다.
유교는 "바르게 서라"고 말한다.
하나는 내려놓음을 가르치고, 다른 하나는 지켜냄을 가르친다.
의상대의 늙은 소나무는 이미 그 두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몸은 바람 따라 휘어졌으되 뿌리는 끝내 절벽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상대가 천 년 넘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곳은 경치 좋은 동해의 정자가 아니다.
불교와 유교, 침묵과 외침, 비움과 지킴, 과거와 현재가 서로의 그림자를 품으며 공존하는 사유의 벼랑이다.
그 서늘한 벼랑 끝에 서면 누구나 결국 같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으며, 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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