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누정기행 13 고성 청간정(淸澗亭)

경산 耕山 2026. 6. 6. 04:26

청간정


설악의 뼈마디와
동해의 살결이 맞닿는 곳
푸른 파도 베고 누운
신선의 정자

청간천 여울목은
제 몸 밀어 내려
바다에 던지고
짠 내음으로 노래한다

절벽 끝 난간에 기대면
솔바람 옷깃을 흔들고
거친 수묵 한 획 번져
겸재의 묵향이 바다 위에 젖는다

산은 물로 흘러내리고
물은 다시 바람이 되어
여행자에게 속삭인다

청간정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지워지는 자리

노송이 도열한 청간정 가는 길
청간정 동해 풍경, 청간천과 동해가 만난다.
청간정에서 바라본 설악산 울산바위
이승만 대통령 친필 편액
최규하 대통령 친필 시판 '산과 바다가 서로 어우러진 옛 누각 위에 과연 관동의 빼어난 풍광이로다'

경계 위에 세운 마음

동해는 오래 바라볼수록 사람을 낮아지게 만든다. 설악의 능선이 바다 쪽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자리, 그 끝에 청간정이 걸터앉아 있다.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정자 하나. 산과 바다와 인간의 시간을 한 화면 안에 겹쳐놓았다.
정자로 오르는 길은 짧다. 하지만 시선은 오래 걸린다. 울창한 해송 숲이 펼쳐지고 멀리 파도가 금빛 모래를 어우러지고 동해의 수평선은 마치 한 폭의 비단처럼 펴진다. 청간정은 그 풍경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좋은 자리에서 조용히 빌려 쓸 뿐이다. 한국의 정자들이 대개 그렇듯,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자연의 틈에 자신을 접어 넣었다.

정자는 늠름하고 화려하게 단청으로 치장했다. 바다를 향해 지나치게 몸을 내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절벽과 바람 사이에 몸을 낮춘 채 오래된 풍류의 자세를 지키고 있다. 처마는 가볍게 날아오르고 기둥은 바닷바람 속에서도 묵묵하다. 그 안팎에 걸린 淸澗亭편액, ‘맑은 시내와 깨끗한 물길이라는 뜻의 이름 속에는, 자연 속에서 마음 또한 맑아지기를 바랐던 선비들의 세계관이 스며 있다.

청간정의 현판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다. 전체적인 인상은 바다 풍경과 묘하게 닮아 있다. 힘을 과시하기보다 유려하게 흘러가고, 획 끝에는 바람처럼 가벼운 여백이 남는다. ‘자의 맑게 뻗는 세로획은 마치 수평선 위로 열리는 새벽빛 같고, ‘자의 복잡한 결구는 설악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바위 사이를 굽이치는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자는 단정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데, 이는 거센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자의 자세를 닮았다. 조선의 정자 문화에서 현판은 건축의 얼굴이자 정신이었다. 좋은 현판은 건물에 걸려 있으면서도 건물을 넘어선다. 글씨 속에 자연을 보는 태도와 인간의 품격이 함께 스며들기 때문이다. 청간정의 편액 역시 그렇다. 가까이에서 보면 붓의 속도와 멈춤이 살아 있어, 마치 바람이 획 사이를 지나가는 듯하다.

이곳에 서면 자연스럽게 겸재 정선 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실제의 산천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려낸 진경산수의 시대를 열었다. 이전의 산수가 중국의 이상향을 좇았다면, 겸재의 그림은 조선의 바람과 절벽과 물빛을 자기 시대의 풍경으로 끌어안았다. 청간정 역시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야 비로소 살아난다. 그런데 겸재의 그림과 현재의 정자는 사뭇 다르다. 겸재 당시 만경대 주변에 있던 정자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기 때문이다. 군부대 내의 만경대를 답사할 수 없는 아쉬움을 겸재 그림을 보며 달랬다.

정자 난간에 잠시 앉아 있자니 풍류라는 말의 뜻도 조금 달라진다. 흔히 풍류를 여유와 멋으로 생각하지만, 옛 선비들에게 풍류는 자연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일이었다. 바람 소리를 듣고, 물의 흐름을 읽고, 잠시 세속의 속도를 늦추는 일. 청간정의 풍류는 흥겨움보다 절제에 가깝다. 떠들기보다 오래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까운 풍경이다.
오늘날의 여행은 너무 빠르다. 사람들은 풍경보다 인증을 남기고, 기억보다 이미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청간정에서는 자꾸만 걸음이 느려진다. 바다는 계속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은 고요해진다. 좋은 정자란 풍경보다는 내 안의 소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길에 정자를 다시 뒤돌아보았다. 청간정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수백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 처마와 내부에 걸린 현판들이 묵묵히 바람을 견디고 있다. 글씨는 종이 위에서 끝나는 예술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시간을 견디며 완성된다는 사실을 청간정의 현판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겸재가 그릴 당시에는 정자의 위치는 아래에 있었다. 겸재는 왼쪽 만경대에 올라 풍류를 즐겼다.
오른쪽 군부대 안에 정자가 있었고 만경대가 있다. 겸재 그림은 군부대에서 바다를 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