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쉬게 하다
- 식영정에서
바람은
나무를 흔들지 않았다
서두르는
내 마음을 먼저 흔들었다
기둥 하나 세워 두고
산을 빌리고
물을 빌리고
하늘을 빌려
한 칸의 쉼을 지었다
그곳에서는
바람도 머물고
구름도 쉬어가고
사람의 그림자마저
걸음을 늦춘다
송강이 읊던 노래는
아직도 솔잎 끝에서
바람이 되어 흐르고
술잔은 사라졌지만
풍류는
숲의 향기로 남아 있다
오늘도 나는
정자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욕심이
조용히 내려앉는 자리에
잠시 마음을 기대었다






그림자마저 쉬어가는 자리
- 식영정(息影亭)에 오르다
바람이 성산의 숲을 한 바퀴 돌아 정자 마루로 올라온다.
마루 한가운데에는 술상이 놓여 있고, 잔마다 맑은 술이 찰랑인다. 석천 임억령이 방금 지은 시 한 수를 읊자 서하당 김성원이 무릎을 치며 웃는다. 제봉 고경명은 눈앞의 산수를 바라보다가 시구 하나를 보태고, 열여섯의 정철은 말없이 그들의 시와 풍류를 마음속에 새긴다. 누군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고, 누군가는 붓을 들어 성산의 저녁빛을 적는다. 술잔이 한 차례 돌 때마다 시 한 수가 태어나고, 웃음 한 자락이 바람에 실려 자미천 너머로 흘러간다. 산과 물, 바람과 달이 모두 시회의 손님이었다. 정자에 모인 이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한 편의 시가 되어 갔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다.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그날의 시회가 정확히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식영정 마루에 앉아 있으면 그들이 나누었을 말과 웃음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솔바람이 처마 밑을 스칠 때마다 낮게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기둥 사이로 산빛이 기울면 먹을 머금은 붓끝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겹쳐진다.
식영정은 1560년 김성원이 장인이자 스승인 임억령을 위해 세운 정자다. 사화와 권력 다툼이 이어지던 시대, 벼슬길은 영광의 길이면서 언제 칼날이 향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길이기도 했다. 임억령과 김성원은 혼탁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성산으로 물러났다. 그들의 물러남은 패배도, 세상과의 단절도 아니었다. 오히려 식영정에는 선비들이 모였다. 시를 쓰고, 학문을 논하고, 세상사를 이야기했다. 한 사람의 휴식처로 지어진 작은 정자는 어느새 조선의 대표적인 문학 공간이 되었다. 자연 속에 물러난 자리가 다시 사람을 불러 모았고, 그 만남은 새로운 문학을 낳았다.
식영정에서 풍류와 학문은 나뉘지 않았다. 시는 삶을 돌아보는 공부였고, 술은 벗과 마음을 나누는 매개였다. 자연 또한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스승이었다. 흐르는 물에서는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겸허를 배우고, 푸른 소나무에서는 겨울을 견디는 절개를 읽었다. 그 모든 풍경과 정신은 훗날 정철의 언어를 만나 「성산별곡」으로 피어났다.
정철이 노래한 성산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이 아니었다. 세상에 지친 사람이 돌아와 자신을 되찾는 자리였다. 자연 속에서 벗을 만나고 시를 나누며, 인간다운 삶의 속도를 회복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성산별곡」을 떠올리며 식영정에 오르면 산은 시의 한 구절이 되고, 바람은 오래된 노래의 가락이 된다.
청풍에 술을 싣고 명월을 벗을 삼아
거문고 시울 아래 풍월을 희롱하니
벗님네야 산수를 사랑커든 이리 오소 - <성산별곡> 중에서
이 노래 속 풍류는 술에 취해 세월을 보내는 한가로운 흥취만을 뜻하지 않는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 삼아 마음을 씻고, 사람과 사람이 시를 나누며 흐트러진 자신을 다시 세우는 삶의 방식이다. 정철에게 성산은 사람과 자연과 문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정신의 고향이었고, 그 중심에 식영정이 있었다.
남도 답사의 길, 가사문학관에 주차하고 성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을 따라 돌계단을 올랐다. 인적이 없어서 그런지 세상의 소음은 어느새 뒤로 물러난다. 자동차 소리는 숲 아래로 가라앉고, 대신 나뭇잎이 서로 몸을 스치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바람은 소나무 가지 사이를 미끄러지며 낮고 긴 소리를 낸다. 돌계단마저 한 걸음씩 천천히 오르게 한다. 비탈 끝에 이르자 정자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식영정(息影亭). ‘그림자를 쉬게 하는 정자.’
이름을 먼저 읽고 나면 정자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
그림자를 지우는 곳이 아니라, 그림자까지 함께 쉬게 하는 곳이다. 식영이라는 이름은 《장자》에 전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 놓으려는 사람이 햇빛 아래를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그림자는 뒤따라왔다. 그가 나무 그늘 아래 멈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림자도 쉬고 몸도 쉴 수 있었다.
그림자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와도 닮았다. 우리는 걱정을 잊기 위해 더 바쁘게 움직이고, 불안을 떨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이루려 한다.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속도를 높이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오히려 그 시선을 더욱 의식한다. 그러나 달릴수록 그림자는 발뒤꿈치에 바짝 붙는다. 그림자는 욕망일 수도 있다. 명예와 미련, 살아온 날들이 남긴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다. 식영정은 그 그림자를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림자까지 데리고 그늘에 앉으라고 말한다.
마루에 올라 기둥을 액자 삼아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무등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그 끝에는 광주호의 물결이 잔잔히 누워 있다. 오래된 소나무들은 굽은 몸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계절을 견딘 기둥과 이끼 앉은 기와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배어 있다. 정자에는 풍경을 가두는 담장이 없다. 무엇을 감추거나 독차지하려는 경계도 없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솔숲이 들어오고, 처마 아래로 하늘이 펼쳐진다. 바람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마루를 가로지르며, 새소리와 물소리는 정자의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는다. 식영정은 자연을 품고 있는 정자가 아니라, 자연 속으로 자신을 비워 낸 건축물이다.
이것이 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차경(借景)의 미학이다. 풍경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 누리는 것. 산과 호수를 정원 안으로 옮겨 놓는 대신, 스스로 정자의 풍경이 되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다. 기둥은 풍경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액자가 되고, 처마는 하늘을 막는 지붕이 아니라 시선을 먼 곳으로 이끄는 선이 된다.
한참 동안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옛사람들은 풍경 앞에 오래 머물렀다. 산을 보면서 높이만 헤아리지 않았고, 물을 바라보면서 맑기만을 감상하지 않았다. 산과 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았다. 자연은 마음을 읽는 거울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사진 한 장을 찍고 곧바로 다음 장소로 향한다. 눈으로 보기 전에 화면에 담고, 마음에 머물게 하기 전에 이름부터 확인한다. 만나는 풍경은 많아졌지만, 풍경 속에 머무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졌다.
돌계단을 내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편액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전서로 쓴 ‘식영정’ 세 글자가 처마 아래 조용히 걸려 있다. 둥글고 느린 획은 글씨라기보다 흘러온 시간처럼 보였다. 정자의 철학은 이미 편액에 걸려 있었다.
식영정 (息影亭) .
세 글자는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묻는다.
무엇을 피해 그토록 달리고 있는가.
어디까지 가야 비로소 멈출 수 있는가.
그림자는 달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늘 아래 몸을 내려놓을 때, 그림자도 비로소 곁에 누워 쉰다.
식영정을 내려오는 길, 숲은 처음보다 더 고요했다. 나는 정자를 떠나지만 마음 한쪽에는 작은 마루 하나가 남았다. 삶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 때마다 돌아가 앉을 수 있는 곳. 내 안의 그림자마저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마음속 식영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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