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에서
물 위에는
정자 하나 떠 있고
저 멀리 바위 위에는
방 하나 앉아 있다
하나는 달빛을 불러 모아
술잔에 담고
하나는 숲의 침묵을 모아
마음에 담는다
정자에서 부른 노래
바람은 안다 그 노래가
깊은 고독의 샘에서 흘러나왔음을
연못에는 달이 떠오르고
바위틈에는 이끼가 자란다
풍류는 물 위에 머물고
사색은 바위 위에 맴도는데
그 둘 사이를 오가던
고산의 그림자
아직도 보길도의 숲길을 걷고 있다




물 위의 무대와 바위 아래의 방
― 보길도 세연정(洗然亭)에서
보길도에 들어서기 전부터 궁금했다.
윤선도는 왜 이 섬에 그토록 깊이 매료되었을까.
남해에는 아름다운 섬이 많다. 풍광이 빼어난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는 왜 보길도에 머물며 생의 마지막 이상향을 그렸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세연정을 찾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답은 세연정만이 아니라 동천석실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숲길을 지나 세연정에 이르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자가 아니라 물이었다. 연못은 생각보다 넓고 고요했다. 물 위에는 숲이 비치고 하늘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정자 하나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세연정(洗然亭)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온 것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고 척화를 주장하다가 조정의 미움을 사 은거를 결심한 뒤였다. 정치의 격랑 속에서 더러워진 마음을 씻어내고(洗), 아무 구속도 없는 맑은 경지(然)에 이르고자 했던 한 선비의 정신적 안식처였으리라. 정자에 올라 바라보니 세연정은 쉼터라기보다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연못과 숲, 바위와 계곡이 객석이 되고 정자는 그 한가운데 놓인 작은 무대가 된다.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고산은 이곳에서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즐겼다. 세연지에 배를 띄우고 《어부사시사》를 연주하게 했으며, 무희들에게 노래와 춤을 시켰다. 세연정은 은둔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교유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물 위에 띄운 한 편의 시이자, 자연과 인간이 함께 출연하는 공연장이었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고 달빛이 연못 위에 내려앉으면 세연정은 또 다른 모습으로 깨어난다. 낮에는 숲과 물이 주인이었다면 밤에는 달이 정자의 주인이 된다. 연못은 은빛 비단처럼 빛나고, 물 위의 정자는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작은 배처럼 떠 있다. 사백 년 전의 어느 달 밝은 밤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고산은 난간에 기대어 술잔을 들었을 때, 바람은 대숲을 스치고 물결은 잔잔히 연못을 흔들었으리라. 그가 사랑한 벗은 권력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그는 소나무와 대나무, 바위와 물, 그리고 달을 벗 삼아 노래했다.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 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그러나 그 풍류의 밑바닥에는 외로움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펼치고자 했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함께 시국을 논하던 벗들은 하나둘 멀어졌다. 연못에 비친 달은 둥글고 충만했지만 그의 가슴 한편에는 빈자리가 남아 있었으리라. 사람은 떠나도 달은 떠나지 않고, 권력은 변해도 바위는 그대로였다. 세상이 등을 돌릴 때에도 물은 묵묵히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그의 그림자는 누구보다 길고 깊었을 것이다.
그 길은 동천석실로 이어진다.
숲은 더욱 깊어지고 동백나무는 하늘을 가린다. 바람 소리만 들리는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자 바위 아래 작은 공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정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소박하여 정자라는 이름조차 사치스럽다. 화려한 단청도 없고 넓은 마루도 없다. 그저 바위에 기대어 앉은 작은 방 한 칸.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비밀의 방 같다.
권력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던 젊은 날의 고산.
당쟁에 휘말리고 유배를 겪으며 세상의 모순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고산.
뜻을 펼치고자 했으나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한 인간.
그는 85세의 천수를 누렸지만, 삶의 절반 가까이를 유배와 은거 속에서 보냈다.
세연정의 윤선도가 풍류객이라면 동천석실의 윤선도는 사색가다.
이곳에 홀로 앉아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젊은 날 이루지 못한 꿈이었을까.
권력의 허망함이었을까.
아니면 자연 속에서 비로소 발견한 자유였을까.
권력은 사람 위에 군림하지만 자연은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
바람은 높은 사람에게만 불지 않고 계곡물은 귀한 사람만 반기지 않는다.
세연정이 자연과 어울리는 삶의 표현이라면 동천석실은 자신을 비워내는 삶의 수행처다.
하나는 물 위에 세운 정자이고, 하나는 바위 아래 숨겨 둔 방이다.
하나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하나는 자기 자신을 향해 열려 있다.
그 두 공간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고산 윤선도라는 한 인간의 모습이 완성된다.
돌아오는 뱃길에서 다시 고산의 삶을 떠올렸다.
세연정의 물 위에는 풍류가 흐르고, 동천석실의 바위 아래에는 침묵이 흐른다.
그가 끝내 사랑한 것은 풍류였을까, 침묵이었을까.
풍류와 침묵은 고산의 한마음 두 얼굴이다.
세연정에서 자연과 어울려 노래하던 사람과 동천석실에서 홀로 자신을 비워내던 사람은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
노래는 침묵에서 나왔고, 침묵은 다시 노래로 돌아갔다.
지금도 보길도의 바람은 두 곳을 오간다.
물 위의 정자를 스쳐 지나간 바람은 숲속 깊은 동천석실로 스며든다.
그 바람은 사백 년의 시간을 건너, 아직도 우리 마음속 어딘가를 조용히 흔들고 있다.



'인문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누정기행 23 담양 송강정(松江亭) (6) | 2026.07.10 |
|---|---|
| 누정기행 21 태인 피향정(披香亭) (8) | 2026.07.05 |
| 누정기행 19 강진 백운동 원림 (9) | 2026.06.28 |
| 누정기행 18 삼척 죽서루(竹西樓) (10) | 2026.06.25 |
| 누정기행 17 강릉 활래정(活來亭) (7) | 2026.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