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누정기행 26 안동 애일당(愛日堂)

경산 耕山 2026. 7. 20. 04:56

애일당에서


강물은
하루도 머물지 않는데

농암은
흘러가는 날 하나를
사랑이라 불렀다

부모를 향한 마음은
시가 되었고

강을 사랑한 풍류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이 되었다

낙동강은
오늘도 흐르지만

애일당에는
아직도
사랑이 머물고 있다.

칠순 농암이 구순 아버지를 위해 연회를 베푸는 그림

 

부모를 사랑한 시간, 강물 위에 시가 되다
    - 농암 이현보의 애일당(愛日堂)

낙동강 상류의 물길이 기암절벽을 휘돌아 흐르는 분강(汾江). 강은 서두르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모래톱을 만나면 잠시 숨을 고른다. 그 강가에 오래된 기와지붕 하나가 햇살을 머금고 앉아 있다.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5)의 애일당(愛日堂)이다.처음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루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강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효()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늙으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일흔의 나이에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던 이야기, 아흔이 넘은 노인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하지만 애일당은 효를 가르치는 정자가 아니다. 효가 풍류가 된 자리이다.

'애일(愛日)'이라는 이름은 한서에 나오는 "효자는 부모와 함께하는 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왔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면 그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농암은 이 단순한 진실을 누구보다 깊이 알았다. 그는 벼슬보다 부모 곁을 택했다. 중앙 정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그는 늙은 부모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 지방관을 자청했고, 마침내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를 귀거래라 말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등진 은둔이 아니었다. 남이 정해 준 시간에서 벗어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돌려준 선택이었다. 그에게 애일당은 쉬기 위한 별장이 아니라 시간을 사랑하는 집이었다.
늙어 가는 부모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
강물에 비친 자신의 흰 머리를 마주하는 시간.
오늘이라는 하루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 시간.

애일은 효 이전에 사랑이었다.
농암은 부모를 사랑했고, 자연을 사랑했고, 사람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마침내 시가 되었다. 그가 남긴 어부가는 조선 강호문학의 새로운 문을 연 작품이다.

긴 강에 바람이 잦아들고
시원한 물결이 일렁이는구나.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고기 낚는 즐거움에 세상 시름 잊었노라.

일엽편주는 작은 배가 아니다. 세속의 욕심을 덜어 낸 사람의 마음이고, 자연 속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은 한 인간의 삶이다. 그는 또 이렇게 노래했다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
정승의 높은 벼슬도 이 강산과는 바꾸지 않겠노라. 세상을 버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무엇이 삶의 본질인지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담담한 고백이다. 농암의 풍류는 술과 노래만을 즐기는 호사가 아니었다. 풍류란 자연 속에서 욕심을 덜어 내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마음을 시로 맑히는 일이었다. 그 풍류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날이 있었다.

어느 가을날, 퇴계 이황과 영남의 선비들이 농암의 작은 배에 올랐다. 강물 위에는 술잔이 떠가고, 술잔보다 먼저 시가 흘렀다. 농암이 한 수를 읊으면 퇴계가 조용히 화답했다. 맑은 물은 술잔을 실어 나르고, 사람들의 웃음은 강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갔다. 강은 흘러가고, 시는 물결보다 오래 남았다그것이 조선 선비들이 누렸던 가장 아름다운 풍류였다.
청량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분강을 감싸고, 낙동강은 오늘도 애일당 아래를 말없이 흐른다. 안동댐 건설로 종택과 정자는 다른 자리로 옮겨졌지만, 처마 끝을 스치는 바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풍경은 옮길 수 있어도 정신은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이곳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마루 끝에 앉아 강물을 오래 바라보았다.
강물은 쉼 없이 흘러가지만 농암은 흐르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부모와 함께한 하루를 사랑했고, 자연과 함께한 한순간을 시로 남겼다. 그의 풍류는 술잔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오늘을 아끼는 일.
자연과 더불어 늙어 가는 일.
그것이 농암이 평생 노래한 어부가였고, 애일당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오래된 삶의 방식이다. 애일당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강 위로 저녁 햇살이 번지고, 강물 위를 스치는 바람 사이로 작은 배 한 척이 떠가는 듯하다. 평생 부모를 사랑한 사람은 강을 노래했고평생 강을 사랑한 사람은 사람을 노래했다. 그래서 농암 이현보의 삶은 한 편의 시조가 되었고, 애일당은 오늘도 효가 풍류가 되고, 풍류가 다시 사랑이 되는 자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