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竹西樓)
- 편액의 숲 아래서
발 아래 오십천
천년의 물결 흐르고
묵향의 집
바람이 나와 길손을 맞는다
현판마다 깃든 세월
먹빛은 층층이 마르고
누각은 오래된 서첩
바람이 페이지를 넘긴다
인물은 사라져도
붓끝은 살아 있어
풍류의 숨결이
여행자의 가슴에 새겨진다





죽서루, 오월의 숨결
신록이 짙어가는 오월, 삼척의 죽서루를 찾았다.
햇빛이 기울 때마다 오십천의 물빛도 조금씩 달라졌다.
죽서루는 그 변화 위에 묵묵히 서 있었다.
대숲을 스쳐 온 바람은 서늘한 기운을 실어 나르고, 강물 위 윤슬은 낮하늘에 흩어진 별빛처럼 반짝였다.
죽서루는 절벽 끝에 서 있다.
아니, 서 있다기보다 바위에서 스스로 자라난 듯하다.
누각 아래로는 오십천이 굽이쳐 흐르고, 발아래 절벽은 수십 길 아래까지 내려앉아 있다.
마루에 서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관동의 수많은 누정 가운데 죽서루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관동 누정이 동해를 향해 열려 있다면,
죽서루는 강을 품고 있다. 바다의 장쾌함 대신 강물의 깊은 사색을 품은 누각이다.
기둥은 울퉁불퉁한 바위를 그대로 품고 서 있다.
밑면은 그렝이 공법으로 다듬어 자연의 형세를 거스르지 않았다.
바위와 기둥은 서로를 억지로 누르지 않는다.
바위 틈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기대어 선다.
강릉의 경포대나 평창의 청학루가 비교적 평탄한 터 위에 자리한 것과 달리,
죽서루는 깎아지른 절벽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기보다 자연의 결 속으로 스며들고자 했던 선조들의 미감과 철학이 이 누각에 배어 있다.
죽서루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바로 이 가공되지 않은 자연미에 있다.
누각 안으로 들어서면 수많은 현판이 시선을 붙든다.
숙종 때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죽서루’와 ‘관동제일루’ 편액은
굵고 시원한 필획 속에 누각의 위엄과 강호의 풍류를 함께 담고 있다.
힘찬 획마다 강물 위를 스쳐 가는 바람 같은 호방함이 살아 있다.
안쪽에는 미수 허목의 글씨도 걸려 있다.
예송 논쟁 이후 정치적 부침을 겪었던 그는 삼척부사로 부임해 죽서루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의 전서풍 글씨 ‘제일계정(第一溪亭)’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구름이 흐르고 물결이 꿈틀거리는 듯한 필치는 오십천의 흐름을 닮았다.
‘시냇가에 자리한 정자 가운데 으뜸’이라는
네 글자에는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죽서루의 정신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것은 허목에게 삼척 시절이 유배와도 같은 좌천의 시간이었음에도,
오히려 그의 예술과 사상이 가장 깊어졌다는 점이다.
중앙 정치의 소음에서 멀어진 자리에서 그는 자연을 스승 삼아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했다.
죽서루는 그렇게 시련마저 풍류로 바꾸는 공간이었다.
죽서루는 오랫동안 문인과 화가들의 마음을 붙들어 온 장소이기도 하다.
고려 말 《제왕운기》를 지은 이승휴가 이곳을 노래했고, 율곡 이이 또한 시를 남겼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이 태백산 그림자를 담아 동해로 흐른다”고 읊었다.
그는 그 맑은 물을 임금이 계신 한양까지 보내고 싶다고 노래했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충정과 그리움을 함께 담아낸 것이다.
숙종과 정조 또한 시문으로 죽서루를 기렸다.
누각 안팎에 걸린 편액과 시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죽서루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문집처럼 느껴진다.
겸재 정선 역시 죽서루를 화폭에 담았다.
그의 그림 속 죽서루는 실제 풍경처럼 생생하면서도 웅혼한 기운을 품고 있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누각과 굽이치는 오십천은
현실의 풍경을 넘어 하나의 정신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단원 김홍도의 <죽서루도>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 준다.
그는 풍경 속에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담아냈다.
덕분에 그림 속 죽서루는 절경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공간으로 살아난다.
화풍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죽서루를 시대를 넘어서는 풍경으로 남겼다.
누각 마루에 앉아 눈을 감는다.
수백 년 전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시를 읊던 선비들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하다.
송강이 바라보았던 오십천의 물결은 지금도 흐르고,
허목이 말한 ‘기이함’은 제각기 다른 기둥 아래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강물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호연지기는 어느새 내 마음속까지 밀려든다.
죽서루를 내려오는 길, 짙푸른 녹음이 조용히 등을 떠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죽서루가 아름다운 것은 높아서가 아니다.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벽을 깎아내지 않았고,
바위를 밀어내지 않았으며,
흐르는 강물을 가두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의 숨결 속에 자신을 맡겼을 뿐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억지로 깎고 다듬기보다, 주어진 시간과 환경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죽서루는 오월의 바람 속에서 그 오래된 지혜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



'인문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누정기행 20 보길도 세연정(洗然亭) (8) | 2026.07.02 |
|---|---|
| 누정기행 19 강진 백운동 원림 (9) | 2026.06.28 |
| 누정기행 17 강릉 활래정(活來亭) (7) | 2026.06.22 |
| 누정기행 16 강릉 경포대(鏡浦臺) (8) | 2026.06.19 |
| 사천진에서 (9) | 2026.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