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래정(活來亭)
물은
머물기 위해 흐르지 않고
정자는
높이 서기보다
물 위에 마음을 띄운다
달빛 아래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연못은 먼저 열리고
사람은 나중에 열린다
흐르는 물 한 줄기
흐르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활래정은
오늘도 조용히
비추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선교장가문은 신학문을 가르치는 ‘동진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독립운동가들에게 남몰래 막대한 자금을 대는 등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해방 후 백범 선생은 그 고마움과 의로운 뜻을 기리고자 선교장에 ‘천군태연(天君泰然)’과 ‘천하위공(天下爲公)’ 두 점의 친필 휘호를 보냈다
“천하는 어느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다”라는 뜻이다. 위정자의 독점이나 사리사욕을 배격하고, 오직 공공의 이익과 정의를 위해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는 대동(大同)사회의 핵심 이상을 담고 있다.


물길 위에 머문 풍류
강릉 선교장 안에 자리한 활래정(活來亭)은 물 위에 떠 있는 정자다.
연못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누각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물 위에 비친 그림자까지 하나의 건축처럼 느껴질 만큼 고요하고 단아하다.
바람이 지나가면 수면이 흔들리고, 정자도 함께 흔들리는 듯하다.
‘활래(活來)’라는 이름도 아름답다.
그 뜻은 ‘물이 흘러온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주자의 시구에서 비롯된 이 이름에는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듯
사람의 학문과 정신 또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로 서쪽 태장봉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은 이곳을 지나 경포호로 흘러간다.
물은 멈추지 않는다.
활래정 또한 멈춰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흐름 속에 놓인 공간이다.
정자로 향하는 길목에는 작은 문 하나가 서 있다.
월하문(月下門).
문설주에는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구가 걸려 있다. 짧은 시구이지만 그 울림은 깊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
선교장 사람들은 이 시를 단순한 장식으로 걸어 놓지 않았다.
그 속에는 찾아오는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늦은 밤이라도, 낯선 길손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라는 뜻이다.
경포의 달빛이 연못 위에 내려앉는 밤이면,
사람들은 이 문을 지나며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월하문은 단순한 출입문이 아니다.
속세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풍류와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동시에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환대의 문이기도 하다.
물 위에 떠 있는 마음
활래정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을 떠올리게 한다.
사각 연못 가장자리에 자리한 ㄱ자형 구조는 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보인다.
화려한 장식은 없다. 대신 단정한 비례와 절제된 선이 공간 전체를 지배한다.
창을 열면 연못이 들어오고, 연못 너머로는 소나무 숲과 하늘이 스며든다.
해강 김규진은 활래정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연못 위 정자는 물결 속에 떠 있고
창을 열면 푸른 산이 집 안으로 들어오네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옛 시를 읊조리니
이곳이 바로 번뇌 없는 선계가 아니겠는가
그의 시처럼 활래정은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정자가 연못 위에 떠 있는 것인지, 연못이 정자를 품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자연은 건축을 압도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풍류와 인심의 사랑방
활래정의 진정한 매력은 절경보다 사람에 있다.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나누던 문화 공간이었다.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선비들은 선교장을 찾아 하룻밤 묵으며 시를 짓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것은 개방성이다.
선교장 가문은 신분과 귀천을 따지지 않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전통을 이어 왔다.
활래정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던 공공의 사랑방이 되었다.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등 수많은 인물이 이곳을 거쳐 갔다.
누군가는 시를 남겼고,
누군가는 글씨를 남겼으며,
누군가는 시대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남겼다.
활래정의 물은 끊임없이 흘렀지만,
그 물가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정신은 오랫동안 공간 속에 스며들었다.
글씨로 남은 풍류
추사는 만년에 관동유람을 하며 선교장과 인연을 맺었고,
‘홍엽산거(紅葉山居)’라는 편액을 남겼다.
‘단풍 든 산속의 집.’
네 글자 속에는 추사 특유의 파격과 자유가 살아 있다.
거친 획과 불균형한 구성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조화를 만들어 낸다.
마치 오래된 소나무와 기암괴석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규원 정병조의 ‘화중계산(畫中溪山)’이다.
‘그림 속 시내와 산.’
이 편액을 바라보면 왜 그런 글귀를 남겼는지 알 것 같다.
활래정 마루에 앉아 연못과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진경산수 한 폭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흐르는 물, 비추는 마음
활래정 안팎에는 수많은 편액과 시판이 걸려 있다.
오래된 나무 기둥과 먹빛 글씨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발효된다.
사람은 떠나도 글씨는 남고, 글씨는 사라진 사람의 정신을 다시 불러낸다.
연못을 바라본다.
물은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지 않는다.
바람이 스치면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면 빛깔이 달라진다.
그 흐름 속에서도 연못은 하늘을 비추고 사람의 얼굴을 비춘다.
활래정이 전하는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다.
흐르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열려 있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래서 이 정자는 단순히 물 위에 떠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자연과 정신이 만나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자리다.
오늘도 활래정의 물은 조용히 흐른다.
그 물결은 어느새 우리 마음속까지 흘러들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신선들이 노니는 깊고 그윽한 무릉도원'이라는 풍류가 살아 있다.
조선 말기의 명필이자 서예가인 소남 이희수(少南 李喜秀, 1836~1909) 선생의 휘호다. 깎아지른 듯한 산봉우리를 연상시키는 '嶠(교)' 자의 독특한 형태와, 정갈하게 내려쓴 '居(거)' 자의 마무리가 솟을대문의 장중한 기둥들과 완벽한 비례를 이루며 묵직하고 당당한 기운을 풍긴다.
'인문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누정기행 19 강진 백운동 원림 (9) | 2026.06.28 |
|---|---|
| 누정기행 18 삼척 죽서루(竹西樓) (10) | 2026.06.25 |
| 누정기행 16 강릉 경포대(鏡浦臺) (8) | 2026.06.19 |
| 사천진에서 (9) | 2026.06.17 |
| 누정기행 15 양양 하조대(河趙臺) (9) | 2026.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