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 16

라만차 풍차마을에서

라만차에서해질녘 라만차의 들판낡은 갑옷차림 늙은 기사돈키호테 그림자가 길다그의 창끝풍차의 날개에 부러지고무모한 돌진은허공을 가르며 끝없이 이어진다이룰 수 없는 꿈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그 길은 실패가 아니다꺼지지 않는 불씨도전의 불길로 타오른다자신만의 풍차 앞에 서서불가능을 향해 창을 들어라‘꿈은 무너져도, 도전은 남는다’라만차의 바람은 속삭인다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중에서이길 수 없는 적이라야 싸워볼 만하고잡을 수 없는 별이야말로 잡아볼 만하다.돈키호테의 무..

해외여행 2025.12.27

세상이 멎은 순간

세상이 멎은 순간 - 하예즈의 키스> 뜨거운 입맞춤세상이 멎은 듯오직 사랑의 불꽃만이입술의 시간을 태운다망토 끝자락에 스민 바람어깨 위에 맺힌 간절한 눈물사랑은 이별 속에 더욱 뜨겁고키스는 영원 속에 더욱 깊어라이 순간그대의 눈빛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그대의 품 안에서 끝없이 자유로워사랑은 이별이 두렵지 않다세상이 멎은 순간프란치스코 하예즈의 키스>는 연인의 입맞춤을 그린 낭만적 장면을 넘어, 사랑과 조국을 향한 헌신을 동시에 담아낸 이탈리아 낭만주의의 대표작이다. 화면 속 남녀는 뜨겁게 입맞추고 있지만, 그들의 몸짓은 단순한 애정의 표현을 넘어선다. 남성은 망토를 움켜쥔 채 계단을 오르려는 자세를 취하며, 떠나야 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여인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간절히 이..

인문기행 2025.12.26

물결 위의 투명한 춤

물결 위의 투명한 춤 - 제백석(齊白石)의 새우>물결 속에 춤춘다작은 새우 춤춘다바다 품에 번쩍인다작은 빛이 번쩍인다휘어진 등마루가느다란 다리물결 위에 새긴다작은 글자 새긴다투명한 껍질숨길 것 없는 힘작아도 헤집는다물살 따라 헤집는다작아도 괜찮다투명해도 괜찮다그 작은 춤은이미 빛나고 또 빛난다작아도 빛나는 존재들제백석(齊白石)의 새우>는 가난한 목수 출신 화가가 삶의 소박한 사물 속에서 발견한 생명력과 인간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필묵으로 새우의 투명한 껍질과 움직임을 표현하며, 작은 존재의 당당한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가치를 일깨운다.제백석(齊白石,1860~1957)은 중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으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목수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인문기행 2025.12.24

천둥의 갈기, 시대의 질주

천둥의 갈기, 시대의 질주 - 서비홍의 분마도(奔馬圖)>자유를 향해 달리는 발굽천둥을 휘몰아치고대지는 푸른 서슬에 몸을 떤다흩날린 갈기는창공에 솟구치는 기세광풍에 타오르는 불꽃폭풍 같은 발굽의 난타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평선 위에 길을 새긴다달리는 영혼의 심장시대를 울리는 북소리에그렇게 세상은 요동친다시대의 질주중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서비홍(徐悲鴻, 1894~1953)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을 융합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고,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서양의 해부학적 관찰과 사실적 묘사를 익혔다. 이후 귀국하여 중국 미술 교육의 개혁을 주도했고, 중국 현대미술의 기틀을 마련했다.그의 대표작 분마도(奔馬圖)>는 1941년 중일전쟁..

인문기행 2025.12.23

고요를 그리는 빛

고요를 그리는 빛 -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카메이도 매화원> 매화 향기 희고고요를 가르는 선마음이 맑다붉은 새벽빛푸른 그림자 위로빛이 솟는다비 내린 길먹빛 번진 하늘에여백만 선다고요를 그리는 빛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카메이도 매화원〉은 그의 말년 대표작인 〈에도 명소 100경〉 가운데서도 유난히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품은 작품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굽이진 매화나무의 검은 가지, 그 위에 흩뿌려진 듯 피어난 흰 매화, 그리고 멀리 번지는 푸른 하늘의 대비는 자연이 가진 시간의 깊이와 계절의 숨결을 한순간에 응축해 보여준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히로시게가 평생 탐구해온 빛·색·선의 조화가 얼마나 정교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새삼 느껴진다.히로시게는 에도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로..

인문기행 2025.12.21

여백의 산

여백의 산 -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 새벽 한 줄산 위로 바람 스치고빛만 남는다고요한 산색바람의 흔적 없이하늘이 맑다멀리 선 산말 없는 그림 한 점마음이 비다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금강산이 있었다면, 에도시대에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지산36경이 있다. 호쿠사이의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은 〈후지산 36경〉 연작 가운데서도 유난히 고요한 숨결을 품은 작품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산과 바람, 그리고 빛이 서로 말을 건네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느껴진다. 〈후지산 36경〉이 그려진 에도시대는 도시 문화가 활발히 성장하고 서민들의 생활 감각이 예술로 표현되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일상 속에서 함께 ..

인문기행 2025.12.20

거대한 파도 앞에

거대한 파도 앞에 -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 거센 파도작은 배 흔들리며푸른 빛 치다하늘을 덮어파도 산처럼 솟고후지는 잠든다거대한 파도를 마주한 인간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는 일본 미술의 정체성과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동시에 흔들어놓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순간의 장면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 자연과 문명의 관계까지 함께 밀려오는 듯한 깊은 울림이 생긴다.에도 시대는 봉건적 질서가 유지되던 시기였지만, 도시가 성장하고 상인·장인 계층이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활기찬 서민 문화가 꽃피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우키요에, 즉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이라 불리던 목판화다. 서민들의 일상과 유행,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예술은 당시 ..

인문기행 2025.12.19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뱅크시의 〈소녀와 풍선〉붉은 점 멀다손끝에서 흩어져저녁이 운다멀어져 가도떨리는 손 올리니새벽이 튼다하나의 이미지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시선바람에 실려 멀어지는 붉은 풍선을 향해 소녀가 손을 뻗는다. 그 짧은 순간은 마치 정지된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해석이 겹겹이 쌓여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장면은 상실의 순간이다. 손끝에서 빠져나간 풍선은 되돌릴 수 없는 것들—사라져버린 시간, 떠나간 사람, 잃어버린 순수함—을 상징한다. 소녀의 실루엣은 말없이 그 상실의 무게를 보여준다. 풍선은 너무 가볍고, 상실은 너무 무겁다.그러나 다른 이에게 이 장면은 희망의 시작이다. 풍선은 멀어지지만, 소녀는 여전히 손을 뻗고 있다. 그 작은 몸짓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닿..

인문기행 2025.12.17

색들의 침묵

색들의 침묵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의 구성〉검은 선 사이숨을 고른 색들이세상을 나눈다빨강은 뜨겁게말하지 못한 마음을한 점으로 태우고파랑은 깊은 곳흔들리지 않는 밤의고요를 품는다노랑은 빛처럼작은 희망 하나를모서리에 걸어둔다아무것도 그리지 않은흰 공간의 침묵 속에서비로소 균형을 배운다균형을 배우는 순간피트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앞에 서면, 처음에는 그 단순함이 나를 멈춰 세운다. 화면을 가르는 검은 수직과 수평의 선,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빨강·파랑·노랑의 원색.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익숙한 이미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함이 아니라 치열한 선택과 절제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몬드리안이 평생 탐구한 ‘조화와 질서’라는 질문의 응답처럼 느껴진..

인문기행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