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뱅크시의 〈소녀와 풍선〉
붉은 점 멀다
손끝에서 흩어져
저녁이 운다
멀어져 가도
떨리는 손 올리니
새벽이 튼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시선
바람에 실려 멀어지는 붉은 풍선을 향해 소녀가 손을 뻗는다. 그 짧은 순간은 마치 정지된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해석이 겹겹이 쌓여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장면은 상실의 순간이다. 손끝에서 빠져나간 풍선은 되돌릴 수 없는 것들—사라져버린 시간, 떠나간 사람, 잃어버린 순수함—을 상징한다. 소녀의 실루엣은 말없이 그 상실의 무게를 보여준다. 풍선은 너무 가볍고, 상실은 너무 무겁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 이 장면은 희망의 시작이다. 풍선은 멀어지지만, 소녀는 여전히 손을 뻗고 있다. 그 작은 몸짓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닿지 않을 것 같아도 계속해서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 뱅크시가 남긴 문구처럼, “희망은 항상 있다”는 메시지가 소녀의 손끝에서 조용히 빛난다.
또 어떤 이는 이 작품에서 순수함의 흔적을 본다.
흑백의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붉은 풍선은 아이만이 붙잡을 수 있는 순수한 감정, 세상을 향한 투명한 시선을 상징한다. 그 풍선이 멀어지는 장면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순수함의 소멸을 떠올리게 한다.
상실과 희망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조화롭게 공존한다. 풍선이 날아가는 방향은 같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언제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며, 보는 이의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한다.
뱅크시는 도시의 회색 벽을 캔버스로 삼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틀어 보여주는 거리의 시인이자 익명의 예술가이다. 정체를 숨긴 채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의 방식은 오히려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전 세계를 돌며 오늘도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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