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물결 위의 투명한 춤

경산 耕山 2025. 12. 24. 00:26

물결 위의 투명한 춤
    - 제백석(齊白石)<새우>


물결 속에 춤춘다
작은 새우 춤춘다
바다 품에 번쩍인다
작은 빛이 번쩍인다

휘어진 등마루
가느다란 다리
물결 위에 새긴다
작은 글자 새긴다

투명한 껍질
숨길 것 없는 힘
작아도 헤집는다
물살 따라 헤집는다

작아도 괜찮다
투명해도 괜찮다
그 작은 춤은
이미 빛나고 또 빛난다

제백석 <새우> 1955년 68 × 34cm 베이징 중국미술관

작아도 빛나는 존재들

제백석(齊白石)<새우>는 가난한 목수 출신 화가가 삶의 소박한 사물 속에서 발견한 생명력과 인간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필묵으로 새우의 투명한 껍질과 움직임을 표현하며, 작은 존재의 당당한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가치를 일깨운다.
제백석(齊白石,1860~1957)은 중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으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목수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그림과 서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제백석이 활동하던 시기는 사회적 격변과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 회화의 정체성과 현대적 변용이 동시에 요구되던 시기였다. 그는 전통 수묵화의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일상 소재와 자유로운 구도를 통해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었다.

<새우>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생명력의 본질을 포착했다. 그는 굵고 묵직한 붓놀림으로 새우의 몸통을 그리면서, 가느다란 선으로 다리와 더듬이를 표현해 투명한 껍질과 섬세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투명한 껍질은 숨길 것이 없는 순수함을, 활발한 움직임은 생명의 끊임없는 생동감을 상징한다. 먹의 농담을 자유롭게 활용해 입체감을 살리고, 새우들이 물속에서 군무를 추듯 흩어져 배치된 구도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사실적 재현을 넘어, 생명의 활력과 자연의 흐름을 담아낸 것이다.
<새우>는 투명하고 작은 생명체가 물살을 헤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작아도 당당히 살아가는 존재의 품격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미약한 존재가 결코 하찮지 않으며, 오히려 숨김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더 단단한 힘을 발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새우>에서 작은 존재가 투명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 삶의 소박한 진실과 당당한 메시지를 전하며, 작은 존재의 삶이 지닌 아름다움과 존엄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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