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들의 침묵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검은 선 사이
숨을 고른 색들이
세상을 나눈다
빨강은 뜨겁게
말하지 못한 마음을
한 점으로 태우고
파랑은 깊은 곳
흔들리지 않는 밤의
고요를 품는다
노랑은 빛처럼
작은 희망 하나를
모서리에 걸어둔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 공간의 침묵 속에서
비로소 균형을 배운다

균형을 배우는 순간
피트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앞에 서면, 처음에는 그 단순함이 나를 멈춰 세운다. 화면을 가르는 검은 수직과 수평의 선,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빨강·파랑·노랑의 원색.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익숙한 이미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함이 아니라 치열한 선택과 절제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몬드리안이 평생 탐구한 ‘조화와 질서’라는 질문의 응답처럼 느껴진다.
몬드리안이 이 작품을 완성한 1930년은 유럽이 전쟁과 산업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흔들리던 시기였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재현 방식이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과감한 실험을 이어갔다. 몬드리안 역시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의 본질을 가장 단순한 요소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그의 신조형주의 사조는 수직과 수평, 원색과 비색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보편적 조화를 찾으려는 철학적 탐구였다.
〈빨강·파랑·노랑의 구성〉은 이러한 탐구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화면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지만, 오히려 그 비대칭 속에서 더 깊은 균형이 드러난다. 빨강은 강렬한 에너지로 화면의 한쪽을 지탱하고, 파랑은 깊고 차분한 무게감을 더하며, 노랑은 빛처럼 가벼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흰색의 넓은 여백은 이 모든 색을 감싸며 숨을 고르게 하고, 검은 선은 서로 다른 요소들을 분리하면서도 동시에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구성은 마치 서로 다른 성질의 존재들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사회적 은유처럼 읽힌다.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깊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잡함 속에서도 본질을 찾으라는 요청이다. 몬드리안은 자연의 나무와 바람, 도시의 소음과 혼란을 모두 수직과 수평이라는 기본 구조로 환원하며, 그 안에서 질서를 발견하려 했다. 이 작품 앞에 서면, 내 삶의 수많은 요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무엇이 지나치게 크고, 무엇이 너무 작으며, 어떤 선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비워야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는지. 〈빨강·파랑·노랑의 구성〉은 결국 ‘균형을 배우는 순간’을 우리에게 건네는 작품이다.
단순한 색과 선의 조합이지만, 그 안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몬드리안은 복잡한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질서를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균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율하고 선택하며 만들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조화를 발견하게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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