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그리는 빛
-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카메이도 매화원>
매화 향기 희고
고요를 가르는 선
마음이 맑다
붉은 새벽빛
푸른 그림자 위로
빛이 솟는다
비 내린 길
먹빛 번진 하늘에
여백만 선다

고요를 그리는 빛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카메이도 매화원〉은 그의 말년 대표작인 〈에도 명소 100경〉 가운데서도 유난히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품은 작품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굽이진 매화나무의 검은 가지, 그 위에 흩뿌려진 듯 피어난 흰 매화, 그리고 멀리 번지는 푸른 하늘의 대비는 자연이 가진 시간의 깊이와 계절의 숨결을 한순간에 응축해 보여준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히로시게가 평생 탐구해온 빛·색·선의 조화가 얼마나 정교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새삼 느껴진다.
히로시게는 에도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로, 특히 여행 풍경화를 새로운 예술 장르로 확립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단연 〈도카이도 53차〉이다. 에도(도쿄)에서 교토까지 이어지는 약 500km의 도카이도 길을 따라 53개의 역참을 그린 이 연작은, 단순한 지도나 기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계절의 변화, 자연의 표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풍경화다.
〈카메이도 매화원〉 역시 이러한 히로시게의 감각이 응축된 작품이다. 매화의 흰빛은 단순한 꽃의 색이 아니라, 겨울과 봄 사이의 문을 여는 작은 숨결이며, 굽은 가지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온 생명의 선이다. 멀리 보이는 정원의 고요한 분위기는,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평온함을 전한다. 히로시게는 이처럼 가까운 것과 먼 것, 어두운 색과 밝은 색, 정적인 것과 움직이는 것을 절묘하게 대비시키며 한 장의 그림 속에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히로시게의 감각은 서양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히로시게의 세계는 나를 새로운 눈으로 이끈다”라고 했다.
이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잠시 멈춰 서서, 자연의 숨결을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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