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천둥의 갈기, 시대의 질주

경산 耕山 2025. 12. 23. 00:33

천둥의 갈기, 시대의 질주
- 서비홍의 <분마도(奔馬圖)>


자유를 향해 달리는 발굽
천둥을 휘몰아치고
대지는 푸른 서슬에 몸을 떤다

흩날린 갈기는
창공에 솟구치는 기세
광풍에 타오르는 불꽃

폭풍 같은 발굽의 난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지평선 위에 길을 새긴다

달리는 영혼의 심장
시대를 울리는 북소리에
그렇게 세상은 요동친다

서비홍의 <분마도> 134 × 65cm 북경 서비홍기념관

시대의 질주

중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서비홍(徐悲鴻, 1894~1953)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을 융합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고,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서양의 해부학적 관찰과 사실적 묘사를 익혔다. 이후 귀국하여 중국 미술 교육의 개혁을 주도했고, 중국 현대미술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대표작 <분마도(奔馬圖)>1941년 중일전쟁이 치열하던 시기, 싱가포르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피란 생활을 이어가며, 투쟁 정신을 말의 속성에 빗대어 표현했다. 서비홍이 말을 그린 이유는 말을 자유·의지·민족정신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힘차게 달리는 말의 모습은 억압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기상을 대변하며, 동시에 중국 민족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그의 말 그림은 해부학적 사실성과 수묵의 자유로운 발묵 기법이 결합되어, 생동감 넘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서비홍의 <분마도>는 이중섭의 <황소>와 함께 민족적 정신과 인간의 생명력을 담아낸 대표적 상징이다.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한국전쟁과 분단의 현실 속에서 탄생했다. 서비홍의 말이 폭풍처럼 질주하는 역동적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중섭의 황소는 땅을 딛고 버티는 인내와 생명력을 상징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동물을 통해 민족이 처한 현실과 정신을 형상화했지만, 공통적으로 시대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상징적 존재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분마도>는 전쟁과 혼란 속에서 그려진 자유와 희망의 선언문이다. 오늘날에도 이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다당신은 어떤 힘으로 시대를 달려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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