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한 칸
- 면앙정에서
비를 막기 위해 지은 집이 아니다
한 칸에는 주인이 살고
또 한 칸에는
달이 머물다 가고
바람이 쉬어 가는 자리
강산은
담장 안으로 들이지 않고
강산 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숙여
풀잎 하나를 배우고
고개를 들어
별 하나를 스승으로 삼았다
면앙정
오백 해를 건너온 정자에는
지금도 빈방 하나 남아 있다


벼슬길에서 물러나 자연으로 돌아온 조선의 문인이 대자연이라는 거대한 지붕 아래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당당하게 서서 자연과 동화되겠다"는 내면의 다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글씨의 획 하나하나에서 가파른 세상사를 뒤로하고 얻은 마음의 평온과 은일의 미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俛有地 仰有天 (면유지 앙유천) 구부리면 땅이 있고, 우러러보면 하늘이 있도다.
亭其中 興浩然 (정기중 흥호연) 그 한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일어나는 흥취가 호연(浩然)하구나.
招風月 揖山川 (초풍월 읍산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불러들이고, 수려한 산과 흐르는 시내에 예(禮)를 갖추어 인사하노라.
扶藜杖 送百年 (부려장 송백년) 명아주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남은 백 년의 세월을 유유자적 보내리라.
자연과 하나 되어 유유자적하게 늙어가는 선비의 풍류를 극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달과 바람도 한 칸씩 살던 집
― 담양 면앙정에서 송순을 만나다
송순은 왜 정지를 지었을까
(면앙정 앞을 흐르는 저 물줄기는)
기나긴 비단을 올올이 가닥가닥 펼쳐 놓은 듯,
시원한 솔바람에 깨끗이 씻겨 내린 듯,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서도 쉼 없이 맑게 흘러가는구나.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저 강물은
도대체 어디로 그리 바쁘게 가는 것일까. - <면앙정가> 중에서
1582년(선조 15년) 송순이 여든일곱 살이 되던 해, 이곳에서는 조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회수연’이 열렸다. 과거 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가 면앙정에서 열렸고, 선조는 어주를 내렸다. 밤이 깊어 술에 취한 스승이 돌아가려 하자 송강 정철이 말했다.
"오늘만큼은 우리가 스승님의 가마를 메어 드립시다."
그러자 정철뿐 아니라 고경명, 임제, 노진, 이안눌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대신들이 앞다투어 가마를 멨다. 벼슬의 높고 낮음은 그 순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권세를 모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존경했던 것이다. 사람은 권력으로는 복종을 얻을 수 있지만, 인품으로만 존경을 얻는다.
정자에도 사람의 성품이 배어 있다.
어떤 정자는 권세를 자랑하고, 어떤 정자는 풍경을 뽐낸다. 그러나 담양 제월봉 아래 자리한 면앙정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는 먼저 건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품이 다가온다.
면앙 송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그는 벼슬길에서도 이름을 얻었고, 시와 가사에서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이 그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뛰어난 문장보다도 사람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송순이 면앙정을 처음 세운 것은 1533년, 마흔한 살 때였다. 그 무렵 조정은 권신 김안로가 권력을 휘두르며 반대 세력을 가차 없이 몰아내던 시절이었다. 선비들은 학문보다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한마디 말이 목숨을 좌우했다. 이후 을사사화까지 이어지면서 수많은 사림이 죽거나 유배를 떠나는 참혹한 세월이 계속되었다.
그 시대에 정자를 짓는다는 것은 자연을 즐기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권력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일인 동시에, 자신의 학문과 양심을 지키겠다는 조용한 선언이었다. 송순도 여러 차례 벼슬에 나아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세상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고, 권력에 자신을 맡긴 것도 아니었다. 나라가 부르면 나아가고, 도가 아니면 미련 없이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곳은 언제나 면앙정이었다. 그래서 이 정자는 은둔자의 집이 아니라 양심을 쉬게 하는 집이었다. 송순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조가 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초가집은 겨우 세 칸뿐이다. 그런데 한 칸은 자신이 쓰고, 한 칸은 달에게 내어 주고, 또 한 칸은 맑은 바람에게 맡긴다. 사람보다 자연을 먼저 집 안으로 들이는 발상이 얼마나 넉넉한가.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더 큰 세계가 펼쳐진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강과 산은 너무 커서 집 안에 담을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집을 강산 한가운데 두고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자연을 차지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이다. 그래서 정자는 풍경을 소유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풍경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공간이 된다.
면앙정이라는 이름에도 송순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면앙(俛仰)'은 고개를 숙여 땅을 굽어보고, 다시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땅을 볼 줄 아는 겸손과 하늘을 바라보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뜻을 잃지 않는 삶.송순은 그 두 가지를 평생 붙들고 살았다.
면앙정에 서면 담양의 산과 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러나 오래 기억되는 것은 풍경보다 사람이다. 달에게 방 한 칸을 내어 줄 줄 알고, 바람과 친구가 될 줄 알며, 세상이 어지러우면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와 자신을 지킬 줄 알았던 사람. 면앙정은 아름다운 정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한 인간이 남긴 삶의 초상이다. 아마도 송순은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은 오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월봉 아래에서 여전히 달과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