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붓으로 쓴 한 폭의 산수화

경산 耕山 2025. 9. 14. 18:02

붓으로 쓴 한 폭의 산수화
    - 원교 이광사의 <침계루(枕溪樓)>


흐르는 세월
베개 삼아 누웠으니
물소리 자장가 되어
마음의 물살이 고요하다

초서의 힘찬 붓놀림
격류처럼 거침없고
행서의 부드러운 곡선
호수처럼 잔잔하다

마르지 않는 먹물
계곡의 물줄기 되어
용처럼 꿈틀대며
푸른 기운 솟아오른다

원교 이광사 친필, 해남 대흥사 침계루 편액

붓으로 쓴 한 폭의 산수화

해남 대흥사의 침계루는 건물 아래로 계곡물인 금당천이 흐르는 위치에 세워졌다. 건물이 계곡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계곡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시원한 물소리는 침계루라는 이름의 뜻, '계곡물을 베개 삼다'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건물은 계곡물 위에 놓인 다리와 같아, 방문객들은 침계루를 건너며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건축물이 자연과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침계루> 편액은 초서와 행서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역동성과 정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한다. 초서의 자유로운 붓놀림은 자연의 격류처럼 힘차고 거침없으며, 행서의 부드러운 곡선은 그 흐름을 고요하게 마무리한다. 이는 마치 계곡물이 굽이치다 호수를 만나 잔잔해지는 풍경과도 같다. 이광사는 이러한 서체의 조화를 통해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내면을 동시에 그려낸다.

<침계루> 편액은 이 공간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냈다. 편액 속 '()''()' 글씨의 힘차고 거침없는 붓놀림은 계곡의 거센 물살을 떠올리게 한다.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튀어 오르는 역동적인 모습이 글씨 한 획 한 획에 살아있다. '()' 글씨는 이와 달리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이는 시끄러운 물소리 위로 고요히 서 있는 침계루 건물의 모습을 반영했다.

침계루라는 이름은 원교가 지향했던 삶의 태도, 즉 자연 속에서 마음을 씻고 고요함을 얻는 이상을 담고 있다. 편액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소리와 선비의 사유가 함께 들려오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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