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내 생의 봄날

경산 耕山 2025. 9. 19. 15:32

내 생의 봄날 
  -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흰구름이
물빛 하늘 위로 흩어지고
하늘색 치마를 스쳐가는 봄바람

양산 아래 웃는 그 얼굴
아이는 뒤따르고
그 걸음 뒤로 계절이 따라왔다
내 생의 봄이었다

사랑을 그렸다
순간을 붙잡았다
봄날의 양산 아래
모든 것이 있었다

그날의 봄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모네 <양산을 든 여인> 1875년 100cm × 81cm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내 생의 봄날은 가고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앞에 서면, 시간은 잠시 멈춘다. 하늘색 치마가 바람에 흩날리고, 양산 아래의 여인은 햇살을 가리며 미소 짓는다. 그녀 곁의 작은 아이는 조심스레 뒤따르고, 그들의 발걸음은 봄날의 들판을 걷는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캔버스 위에 고요히 정지되어 있다. 이 그림은 모네가 사랑했던 가족들과의 하루를 담은 감성의 기록이다.

모네는 바람을 그렸다. 아니, 그는 시간을 그렸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욕망, 지나가는 봄날을 영원으로 만들고 싶은 사랑의 의지. 우리는 모두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얼굴은 잊혀지지만, 감정은 남는다. 모네는 그 감정을 그렸다. 양산 아래의 여인은 햇살을 피하는 듯하지만, 그 빛은 그녀를 감싸고 있다. 그녀는 빛 속에 존재한다. 그녀는 모네의 사랑이었고, 그의 삶이었으며, 이제는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는 존재가 되었다.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에 등장하는 여인은 그의 첫 번째 아내, 카미유다. 처음에는 모네의 모델로 활동했지만, 곧 모네의 연인이자 뮤즈, 그리고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첫 아들 장을 낳았다. 당시 모네는 집안의 반대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카미유와의 관계를 지켜냈다. 결국 1870년에 결혼했고, 이후 모네의 많은 작품 속에 그녀가 등장한다.

양산을 든 여인은 가족이 아르장퇴유에서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보내던 1875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모네가 가장 사랑했던 순간과 가족을 담은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카미유는 1879년(35세)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모네의 그림 속에서 빛과 바람, 그리고 기억의 형상으로 영원히 살아 있다. 그림 앞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나의 삶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한 점의 빛으로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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