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린 그림
- 박수근의 〈굴비〉
화강암 질감의 붓끝에
말라붙은 굴비 두 마리
시간을 말린 풍경
가난한 화가의 선물
“잘 먹고 잘 살아라”
굴비를 그려 마음을 건넸다
신혼의 밥상에 올린
가난한 축복
굴비는 그림이 되어
또다른 삶을 선물한다

결혼 선물로 건네진 삶의 축복
이 그림에는 예술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 울림이 있다. 박수근은 생전 “미스 박 시집갈 때 꼭 그림 한 점 선물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결혼식장에 직접 찾아가 〈굴비〉를 선물로 건넸다. 굴비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귀한 존재였다. 박화백은 실제 생선을 선물할 수 없었기에 그림으로 대신했다. 그것은 먹거리의 그림이 아니라, 먹거리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삶의 축복이었다.
이 그림은 한때 팔렸다가, 32년 뒤 1만 배의 가격으로 되사서 박수근미술관에 기증되었다. 그만큼 이 그림은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적 사연을 품고 있다. 박화백과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굴비〉는 시간을 말린 예술이다. 물고기 두 마리, 말라붙은 생선에는 노동의 흔적, 가족의 식사, 예술가의 마음이 엮여 있다. 가난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나누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삶을 닮은 예술에 대한 신념으로 박화백은 굴비를 그려 그림을 선물했고, 그림은 다시 그의 삶을 선물했다. 평생 가난했지만, 그의 그림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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