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에서 시작된 미학의 여정
- 박수근미술관을 다녀와서
물기를 머금은 가을비가 박수근미술관의 돌담을 적시던 날,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10년 전의 기억이 빗물처럼 스며들었다. 그때도 비가 왔던가.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반가운 방문이었다. 양구의 산자락에 자리한 박수근미술관은 건물 형태부터 관람자의 호기심을 불러온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돌로 쌓은 미학이랄까? 박수근 그림의 원형질을 대변하는 아이디어가 놀랍다. 화강암 조각들을 서축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린 둥근 건물은 그의 그림 속 배경처럼 소박하고 단단하다.
미술관 앞에는 ‘빨래터’가 재현되어 있다. 박수근이 아내 김복순을 처음 본 장소이자, 그의 대표작이 탄생한 공간이다. 그 빨래터는 사랑과 추억, 그리고 예술의 출발점이었다. 청년 박수근은 이 빨래터에서 처녀 김복순을 처음 보았다. 그녀가 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빨래터에서 처음 본 그녀에게 청혼 편지를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박수근과 고등학교를 졸업한 ‘배운 여자’ 김복순. 김복순의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아들의 상사병에 아버지가 나섰다. “내 아들만큼 네 딸을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으냐”는 아버지의 한 마디가 결국 그녀와의 결혼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사랑은 신분과 조건을 뛰어넘은 진심의 결실이었다. 박수근은 아내를 향한 사랑을 그림 속에 담았고, 김복순은 그의 예술을 지켜낸 헌신적인 동반자였다.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 남편을 지지하며, 그의 예술혼을 지켜낸 그녀의 헌신은 몇 번을 들어도 눈물겹다.
미술관은 많이 달라졌다. 10년 전의 미술관은 첫 장의 서문이었다면, 지금은 그 서문을 지나 본문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이 변화는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속 나목이 봄을 맞아 꽃을 피운 것과 같다. 과거엔 앙상했던 가지가 이제는 관람객과 예술가들의 발걸음을 품는 그늘이 되었다. 몇 년 전, 이건희 컬렉션 기증 작품과 자체 구입작들이 더해져 전시작 수가 대폭 증가했고 드로잉, 판화, 유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격조 높게 전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작품의 보존 상태와 전시 기획이 전문화되었다. 도슨트 해설과 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되어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미술관 옆 골짜기 수천 평을 확보하여 워크숍, 체류형 프로그램 등 직접 체험 가능한 공간으로 확장 중이었다. 미술관의 변화가 고맙고 반가웠다.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키워갔다. 6.25 전쟁 중 피난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미군 PX에서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그림에는 표정 없는 인물들, 인물들의 뒷모습과 옆모습, 앙상한 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인물들은 얼굴이 없다기보다, 감정을 담기 위한 그릇처럼 비워져 있다. 찻잔에 차를 따르듯,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그 표정은 달라진다. 슬픔을 가진 이는 고단함을, 희망을 가진 이는 인내를 읽어낸다. 선함과 진실함은 과장된 표정보다, 담담한 얼굴에 더 깊이 스며드는 법이다. 표정 없는 인물들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뒷모습으로, 옆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무엇 하나 변변히 내세울 것도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자화상이자, 시대의 아픔을 담은 초상이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고, 누구나 그 삶을 상상할 수 있다. 뒷모습과 옆모습에는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서민의 삶을 그린 조선의 밀레였다. 박화백의 나무는 잎이 없고, 가지는 마른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죽은 나무가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다. 삶의 고단함을 견디는 사람처럼, 나무는 침묵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앙상한 가지는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인내의 선이다. 앙상한 나무는 겨울을 견디는 생명이다. 박수근의 그림은 오래된 민요처럼, 반복되는 선율 속에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 표정 없는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고, 앙상한 나무는 우리의 계절이며, 뒷모습은 우리가 지나온 길이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가였다.
박화백의 작품에는 연작이 많다. 그의 연작은 마치 오래된 우물에서 퍼올린 물과도 같다. 매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그 물은 늘 새롭고 다르다. ‘시장 사람들’, ‘가족’, ‘나무’, ‘노인들’ 같은 연작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삶의 결을 조금씩 달리 새겨낸 기록들이다.
박화백에게 연작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 번 그렸다기보다는 같은 삶을 다른 날에 바라보는 일이었다. 시장의 풍경은 매일 같지만, 그날의 햇살과 사람들의 표정, 짐의 무게는 다르다. 가족의 모습도 늘 곁에 있지만, 아이가 자라고, 아내의 손이 더 거칠어지고, 노인의 등이 더 굽는다. 그는 그 미세한 차이를 포착했다. 마치 직물의 씨실과 날실처럼, 반복 속에서 삶의 결을 짜내는 방식이었다. 연작은 그의 붓이 시간과 감정을 엮어낸 직물이며, 그 직물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를 감싼다. 같은 주제, 다른 감정. 같은 인물, 다른 날씨. 그는 반복을 통해 삶의 깊이를 더했고,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발견했다.
도슨트의 안내가 끝나고 나는 인상에 남았던 그림들을 다시 찾았다.
<굴비>는 따뜻한 그림이었다. 박화백의 '굴비'와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의 인연은 한 예술가와 화랑인 사이의 아름다운 약속과 존경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1950년대 반도화랑의 앳된 직원이었던 박명자에게 박수근 화가는 "시집갈 때 그림 한 점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이 결혼 선물로 그의 유작 '굴비'를 건네며 약속이 지켜졌다. 이후 화랑 운영난으로 그림을 팔아야 했던 박 회장은 늘 마음의 빚을 안고 살다가, 2002년 엄청난 금액을 주고 그림을 되찾았다. 하지만 박회장은 이를 개인 소장하는 대신, 박수근 화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의 고향에 세워진 박수근미술관에 '굴비'를 기증하며 예술가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고 그 가치를 모두와 나누었다는 도슨트 안내를 되새겨 보았다. 그림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얹혀지니 그림의 가치가 달리 보였다. 10년 전에 와서 이 그림을 보고 나는 자린고비를 생각했었다.
이 정물화의 말린 생선의 질감과 색채는 삶의 고단함을 압축해놓은 듯하다. 굴비는 생계를 위한 음식이자, 약속과 정을 담은 선물이다. 박화백의 말처럼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철학이 이 그림에도 스며 있다.
<나무와 두 여인>은 앙상한 나목 아래 아기를 업은 여인과 머리에 짐을 인 여인이 등장한다. 이 나무는 말라 죽은 고목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다. 박수근은 자신의 고단한 삶과 희망을 이 나무에 투영했다. 박완서 <나목(裸木)>은 이 그림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데서 집필했다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젊은 시절 박수근이 힘들게 그렸던 그림을 '고목(枯木)'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작전에서 다시 본 그 나무가 죽은 나무가 아니라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이 그림의 단조로운 무채색은 절망이 아니라 인내의 색이다. 나무는 박화백 자신이고, 여인들은 그의 아내와 딸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은 고단하지만, 나무의 품속에서 든든하게 기댈 수가 있다. 나무 아래 두 여인은 그대로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등에 업고 머리에 인 모습이었다. 유년 시절 여섯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한 어머니의 고달픈 삶,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고생 끝에 관절염이라는 모진 선물을 받고 다리를 절룩이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쓰렸다. 그 시절, 어머니에게는 마음 편히 기댈 나무가 있었을까?
<절구질하는 여인>은 박수근이 자주 그린 소재 중 하나였다. 그는 이에 대해 “나더러 똑같은 소재만 그린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생활이 그런데 왜 그걸 모두 외면하려는 걸까”라고 말했다. 절구질 안에는 가족을 위한 헌신과 삶의 리듬이 있다. 이 그림은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은 바람에 흔들리는 오래된 소나무처럼 굽었지만, 그 뿌리는 삶의 깊은 곳에 단단히 박혀 있다. 그녀의 팔뚝은 세월을 이겨낸 강물의 둑처럼 단단하고, 절구질의 반복은 가족을 위한 사랑의 맥박처럼 고요히 울린다.
화면을 채운 울퉁불퉁한 질감은 삶의 상처와 흔적을 품은 화강암의 표면 같고, 그 위에 새겨진 여인의 모습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조각처럼 영원히 자리한다. 박화백의 마티에르는 어린 시절 돌멩이에 그렸던 꿈의 흔적이자, 한국인의 삶을 껴안은 손길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박화백의 그림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엔 사랑, 고단함, 희망,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이 담겨 있다. 빨래터에서 시작된 그의 사랑은 그림 속 여인들의 뒷모습으로 이어지고, 굴비 한 마리에도 약속과 정이 배어 있다. 절구질하는 여인의 팔뚝엔 삶의 무게가 실려 있고, 나목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의 그림은 납작하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결코 얕지 않다.
미술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느렸다. 비에 젖은 돌길을 따라 걷는 동안, 감상한 그림들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작은 화면들 속에 담긴 삶의 무게와 따뜻함은, 오래된 민요처럼 반복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삶의 침묵 속 진실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박화백은 붓으로 철학을 그렸다. 그 선함과 평범함의 철학은 오히려 가장 깊은 진실이 되었다. 인간의 존엄과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의 그림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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