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어부와 나무꾼

경산 耕山 2025. 7. 27. 12:56

어부와 나무꾼
  - 이명욱의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감상


갈대 무성한 사잇길
허리춤에 도끼 찬 나무꾼
기다란 장대 둘러멘 어부
남루한 두 옷자락이 만났다

세상이란 것이 어찌 그리 시끄러운가
모두들 옳다 해도 마음은 늘 배고프지
물결처럼 살면 어찌 다툴 일이 있으랴
나무가 자라듯 때를 따라 사는 법이지

살아가는 법을 묻고
삶의 흐름을 낚는 길 위에서
세속을 비켜선 두 그림자
대화보다 긴 침묵 속에
숨겨둔 지혜가 오고간다

한 사발 탁주에
봄바람 불러오고 가을 달 띄우면
풀잎의 흔들림도
새소리의 높낮음도
모두가 가르침이고 배움인 것을.......

이명욱 어초문답도 17세기 후반 173.2*94.3Cm 간송미술관

자연 속에서 어부와 나무꾼이 대화를 나누며 걷는 장면을 묘사한 이명욱의 [어초문답도]는  은자의 삶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깊이 있는 그림이다.
초부(나무꾼)는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장대를 든 모습으로 자연 속에서 철리(哲理)를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智者)’ 을, 어부는 낚싯대를 둘러메고 고기를 든 모습으로 강호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어진 사람(仁者)’을 의미한다.
북송의 유학자 소옹(邵雍)의 『漁樵問對』와 소동파의 『漁樵閑話』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 속에서 천리(天理)를 따르는 삶을 표현하여 세속을 벗어난 은자의 삶, 자연과 인간의 조화, 조선 문인들의 은둔 사상을 담은 작품이다.

이명욱(李明郁)은 조선 숙종 대, 도화서의 화원으로 정밀한 안면 묘사, 능숙한 옷 주름 표현, 대각선 구도를 활용한 생동감 있는 그림을 잘 그렸다. 숙종은 그를 아껴 특별히 도장을 하사했으며, 그의 필의(筆意)를 기리는 도장을 새겨주려 했으나 이명욱이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겸재 정선 <어초문답> 18세기 23.5 * 33Cm 간송미술관

이명욱의 그림과 겸재의 그림이 내용은 다르지만 '어부와 나무꾼'이라는 은자들의 사상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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