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의 품에 안기다
구다우리 가는 길
조지아 신앙의 중심, 츠베리 수도원의 언덕에 서면, 고요히 흐르는 두 강,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서로 다른 색을 띠며 하나로 합쳐지는 두물머리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서로 만나 섞이기 직전의 경계가 뚜렷하다. 이 두 강이 부드럽게 손을 맞잡는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시적인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강이 합쳐지는 지점 너머로는 우리의 경주와도 같은 고대 도시 므츠헤타가 자리 잡고 있다. 붉은 기와 지붕과 돌담으로 이뤄진 전통 가옥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고, 중심에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의 웅장한 돔이 그 위엄을 드러낸다. 자연과 역사, 신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답다. 그 풍경은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안식처같이 느껴졌다.
츠베리 수도원을 둘러보고 와이너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포도주의 고장에서 마시는 와인에 취해 과음을 했다. 이제 구다우리까지 4시간 이동을 해야한다. 므츠헤타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접어들자 도시는 이내 밀려나고 자연이 천천히 제 얼굴을 드러냈다. 참나무 숲에 작은 시내가 소리내며 흐른다. 숲 속의 도로는 운치가 넘쳤다. 숲길을 오후 내내 드라이브만 해도 좋겠다는 상념 속에 잠시 졸음에 빠져들었나 보다. 얼마를 달렸는지 도로는 갈수록 가팔라지고,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공기마저 묘하게 얇아진다. 차창 밖, 드넓은 경사지 위로 양떼 한 무리가 스쳐가고 멀리 목동의 검은 실루엣이 정겹다.
도로는 어느새 급격히 휘어지고, 창 밖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툭 떨어졌다. 가드레일 하나 없는 절벽 끝, 멀리서 바라보던 산길은 아름다웠지만, 그 안으로 직접 들어선 지금, 내 손은 시트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다리는 조금씩 굳어간다. 모처럼 마주친 트럭은 골짜기에서 솟아오르듯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곡선 속으로 사라진다. 엔진 소리는 작게 으르렁거리고, 타이어는 신음한다. 교행을 잘못하면 그 아래는 수백 미터 허공이다. 고소공포증에 사로잡혔다. 머리가 어질하고, 시야는 흔들린다. 창 밖 멀리 시선을 두고 앞만 바라보려 해도 구불길은 끝날 줄 모른다. ‘이 길은 천국으로 향하는 가느다란 실’이라 불렀다는 어느 길손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낭만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길이었다. 구다우리는 아직 멀었고, 이건 여행이 아니라, 내게는 진실로 모험이었다.
새로워진 풍경
해발 2900미터 고원지대에 자리한 구다우리에 도착하자 숨이 조금 가빠지지만 그보다도 풍경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혔다. 눈앞에 줄지어선 코카서스 준봉들.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이 산 능선을 따라 흘러내리고 야생화 군락지에 붉은 빛이 스민다.
7월의 구다우리. 마르코폴로 호텔에 머물렀던 그 기억은 동화 속에 들어간 듯한 경험이었다. 고원지대에 자리한 이 숙소는 자연을 감상하는 전망대이자 야생화 정원이기도 했다. 호텔의 테라스에 앉아 바라본 구다우리의 초록 산록은 그림이었다. 스키 슬로프가 사라진 여름의 산자락은 온통 초록빛 융단으로 깔려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야생화가 피어 있어 마치 초록의 물결 위에 색색의 자수가 놓인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호텔 주변으로 펼쳐진 야생화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붉은 금낭화, 보랏빛 야생제비꽃, 노란 들국화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서로 인사를 건네는 듯 보였다. 그 풍경은 자연스레 점봉산 마루, 곰배령을 떠올리게 했다. 곰배령이 해발 1,100미터의 점봉산 자락에 펼쳐지는 '천상의 화원'이라면, 구다우리의 야생화는 그보다 거칠고, 더 자유로운 고산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곰배령이 정돈된 생태 탐방로를 따라 조심스레 감상하는 곳이라면, 구다우리의 야생화는 자연 그대로의 야성미를 간직한 채, 바람과 구름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현대인의 파라다이스를 여기서 찾아 보았다.
꽃들이 많아서 좋아라
꽃이름 몰라도 좋아라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오늘의 여정을 되돌아보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대지를 때린다. 한바탕 퍼붓던 폭우는 대자연의 청소부였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이 모든 풍경을 정화시키는 자연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새로 맞는 아침은 마치 무대 커튼이 열리듯,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고 산뜻하다. 천둥은 산을 흔들었고 폭우는 밤을 씻어내고 고원은 다시 태어났다. 오늘은 구다우리에서 카즈베기를 향해 출발하는 여정이다. 폭우에 씻긴 숲과 바위, 야생화까지 모든 것이 생기가 가득하다. 멀리 보이는 코카서스 준봉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웃는 듯하고, 그 아래로는 구불구불한 도로와 협곡이 어우러져 자연의 입체적인 조각처럼 다가왔다. 공기 한 모금에도 풀과 흙의 내음이 가득하고, 지나가는 모든 풍경이 더욱 새롭다. 어제의 폭우가 선물한 조용한 기적처럼.
해발 약 2,200미터 고개를 넘는 길목에 이르면 구다우리의 랜드마크,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시야를 압도한다. 이곳은 1983년에 조지아-러시아 우호기념으로 세운 조지아기념탑이란다. 원형의 벽면 안쪽은 조지아와 러시아의 역사와 전설을 담은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화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 좌우에는 영웅과 민담 속 인물들이 등장한다지만 이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내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구조물의 진짜 매력은 그 너머에 있다. 악마의 협곡이라 불리는 아찔한 절벽과 그 뒤로 펼쳐지는 코카서스 산맥의 파노라마다. 이곳에 서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이 얼마나 장엄한지를 실감한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바람은 구조물의 곡선을 따라 울림처럼 퍼져나간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겸허함
구다우리에서 카즈베기(스테판츠민다)로 이어지는 길은 코카서스의 심장을 관통하는 여정이다. 이 길은 ‘조지아의 군사도로’라 불리는 역사 깊은 도로로, 해발 2,0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지대를 따라 이어진다. 도로는 구불구불, 지그재그 산길로 연결되며, 아찔한 절벽을 지나면 끝없이 협곡과 산맥 사이로 이어진다. 협곡 사이 강이 흐르고 군데군데 양떼들이 느릿하게 오르내리는 이 길은, 어쩌면 물가가 저렴한 알프스를 닮은 풍경으로 보이고 한편으로는 몽골 초원의 거친 숨결도 느껴진다. 푸드트럭이 있는 작은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엄청난 카즈베기 산맥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감상했다.
카즈베기는 이 고장이 낳은 시인의 이름이다. 이 땅의 영혼을 시로 새긴 인물이어서 그런지, 시인의 이름이 지명으로 바뀌었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고요한 산처럼 묵직한 울림을 준다. 마을 중심의 시인의 동상은 그가 남긴 문학의 흔적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다. 그는 고향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 고향의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내 어린 날의 웃음과 어머니의 기도를
모두 품고 있다
언덕 위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에 오르는 길은 험했다. 아무리 교회가 신의 선물이라지만 무신론자에게 ‘수도의 길은 고달프다’는 생각을 하며 올랐다. 4세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한때 외세의 침입을 피해 므츠헤타의 유물과 성 니노의 십자가를 숨겨두었던 장소이며, 소련 시절에도 예배가 중단되지 않았던 유일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끝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교회 앞 언덕에 서면, 발밑에는 카즈베기 마을의 붉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너머로는 코카서스의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다. 시인의 말처럼, ‘침묵조차 노래가 되는’ 순간이다. 그 풍경은 침묵으로 조용히 마음을 적신다. 뒤쪽으로는 카즈베기산이 운무 속에 가려 있다. 바람은 고요하고, 교회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작은 십자가 하나가 그 풍경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교회 내부로 들어갔다. 좁고 어두운 하나님의 공간에 침묵이 흐른다. 이곳에서의 침묵은 자연과 인간, 신과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카즈베기산의 모습을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는 순간, 마침내 저 멀리 구름 속에 가리워졌던 카즈베기산(5047m)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정면으로 마주한 카즈베기산은 말 그대로 감정을 삼키게 했다. 코카서스의 영혼, 프로메테우스가 형벌을 받은 산이다. 눈앞의 광경은 풍경을 넘어선 '존재' 그 자체였다. 산은 말이 없지만, 대신 큰 울림을 준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카즈베기 영봉은 카메라에 담을 새도 없이 다시 운무에 휩싸이는 아쉬움을 주었다. 감춰진 아름다움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잠시나마 이름 없는 길손에 대한 차별없는 베품이라 여기며 감사했다. 이 코카서스의 보석들을 나는 카메라보다 확실한 내 안에 보관해 두었다.
사진으로 보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寫眞不如肉眼)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지(肉眼不如心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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