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영혼의 발자국을 새기다
돌로미티 가는 길
7월의 끝자락,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코르티나 담페초로 향하는 버스 창가에 기댔다. 아드리아해의 짭조름한 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차창 밖으로, 베네토 평원의 광활한 옥수수밭과 포도밭이 지루할 만큼 평화롭게 이어진다. 풍요로운 평원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대와 설렘이 뒤섞인 감상에 젖었다. 차가 북쪽으로 향할수록 풍경의 고도는 점차 높아졌다. 나지막한 구릉이 늠름한 언덕으로, 언덕은 어느새 깊은 계곡을 품은 산으로 몸집을 키웠다. 마침내, 저 멀리 시야의 끝에서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직으로 솟구친 연회색 암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왜 돌로미티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건축물" 이라 격찬했는지, 나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몽블랑에 샤모니가, 마터호른에 체르마트가 있다면 돌로미티엔 코르티나 담페초가 있다. 알프스의 여왕이라 불리는 돌로미티의 관문, 코르티나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왜 이곳을 '여름이라 쓰고 가을로 읽어야 한다'고 표현했는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한여름의 햇살 아래에서도 공기는 수정처럼 맑고 서늘했으며,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싼 기암절벽의 위용은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이곳에서 구름은 단순한 수증기 덩어리가 아니었다. 깎아지른 고봉(高峰)을 파트너 삼아, 하늘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시시각각 장엄한 오페라를 공연하는 역동적인 배우같았다. 건너편 높은 산등성이 초원 위에 나무와 돌로 지은 그림 같은 집들은 신선이 사는 별천지처럼 아늑했다.
하늘 아래 첫 번째 길, 트레치메를 향하여
‘돌로 되어 돌로미티, 돌이 많아 돌마니티’ 돌로미티를 내 방식 대로 이해한 자작시 구절처럼 돌로미티의 길은 평탄한 돌길이었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그곳을 등지고 몇 걸음 옮기자마자, 돌로미티의 상징과도 같은 세 개의 거대한 암봉,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였다. 지상에서 가장 큰 이빨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사진으로만 보던 피콜라, 그란데, 오베스트. 직접 마주한 삼형제 봉우리의 수직 북벽은 수억 년의 시간을 압축한 듯한 위압감으로 압도했다. 트레킹 코스는 트레치메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다. 세 봉우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양을 달리한다. 그 아래서 알프스의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목장 웅덩이에 비친 트레치메의 반영은 환상적이었다. 시인 바이런이 노래했듯, "산들은 느낌이다(To me, high mountains are a feeling)." 트레치메는 내게 숭고함이라는 이름의 감정이었다. 트레치메를 관망하며 마시는 맥주의 맛은 아주 특별했다. 맥주의 청량감에 돌로미티를 오른 사람들만이 느끼는 쾌감이랄까? 회색빛 너덜겅을 지나고 완만한 목장길을 걷는 내내, 나는 말없이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아쉽다. 이 장엄한 봉우리 삼형제를 어찌 두고 떠날 수 있을까. 발걸음은 앞으로 향했지만, 마음은 자꾸만 뒤에 남는 풍경에 얽매였다.
아우론조 산장의 별밤
해발 2,333미터의 아우론조 산장, 거대한 회색빛 바위 첨탑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돌로미티 고원에 자리잡은 산장이다. 산악인들의 로망이자 성지인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산장 절벽 아래로 비현실적인 초록빛 융단이 펼쳐진다. 알프스 야생화의 달콤한 향기와 갓 자란 풀의 싱그러움이 배어난 공기는 밀도부터 달랐다. 갑자기 하늘 한쪽이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번쩍 거린다. 예고도 없이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진다. 놀란 소들이 잠시 풀을 뜯는 것을 멈추고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샤워를 한다. 알프스 소나기는 초원에 또 하나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 격정적인 고원의 연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 10여 분 만에 막을 내린다. 곧이어 소나기가 쏟아내린 시냇물이 수정처럼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크고 작은 자갈에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경쾌한 리듬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자연의 연주였으리라. 물소리 사이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워낭 소리가 들려왔다. 느릿하고 부드러운 그 소리는 알프스 초원의 적막을 깨는 유일한 배경음악이었다.
소나기가 씻어낸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지고, 땅거미가 내리자 아우론조 산장에 등불이 켜졌다. 어둠 속에 불 켜진 산장의 모습은 동화 속의 모습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마침내, 산장에 불이 꺼졌다. 어둠을 더듬어 산장 밖으로 나왔다. 밤의 진짜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칠흑 같은 검은 벨벳 위로 누군가 한 움큼의 다이아몬드를 흩뿌린 듯,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대기의 마지막 한 점 먼지까지 씻어낸 소나기 덕분에 별빛은 더없이 선명하고,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거대한 띠를 이루며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든 완벽한 고요. 간간이 산장 멀리에서 소들이 뒤척이며 밤을 지키는 소리는 알프스의 또다른 밤풍경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서 프로방스 산록에 비가 내린 후 목동과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함께한 별밤의 분위기가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만났던 별밤의 추억과도 겹쳐졌다.
야생화의 속삭임
돌로미티는 높기만 한 산이 아니었다. 드넓은 초원도 돌로미티였다. 그 초원에는 어김없이 맑은 시내가 흐르고, 소들이 한가롭고, 무수한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돌로미티의 길은 험준한 바위길이면서 동시에 작고 여린 생명의 길이기도 했다. 길 위에서 수많은 야생화로 이루어진 '돌로미티 화원'을 만났다. 짙푸른 겐티아나, 수줍은 분홍빛의 알펜로제, 앙증맞은 아스터. 이름 모를 들꽃들이 바위틈과 초록 융단 위에서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졌다.
"저기 가는 길손아,
들꽃을 밟지 마소.
지난밤 가만히 내려와
오늘 아침 받은 보랏빛 이름표 하나
꽃은 말하지 못하니
내 마음이 아프다오."
지상으로 내려온 별이라는 에델바이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한없이 몸을 낮추고 또 낮춰야만 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여린 생명 앞에서 나는 가장 겸손한 순례자가 되었다.
어느 작은 산장, 포다라 산장에 이르렀을 때 나는 더욱 놀라운 풍경을 마주했다. 조그만 예배당 문턱까지 이어진 소들의 발자국과 그들이 남긴 쇠똥.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쇠똥에서 역겨움이 아닌, 지극히 성스럽고 소박한 예수님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가장 낮은 곳, 가장 평범한 것에서 발견하는 신성함. 돌로미티는 내게 그런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었다.
구름 위를 걷는 길, 라가주오이를 오르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라가주오이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 길은 험준한 등산로가 아닌 삶과 죽음의 전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다. 오스트리아군과 이탈리아군이 파놓은 참호와 터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한 걸음 한 걸음에 역사의 무게를 더했다. 현실과 역사가 뒤섞인 듯한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끝없이 이어진 갈지(之)자 길은 저 푸른 하늘로 빨려 들어갈 듯 아득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마르몰라다, 토파나 등 돌로미티의 거봉들이 우리를 위해 장엄한 열병식을 거행하는 듯했다. 길은 높고 길고 가팔랐지만 거봉들과 운무가 연출하는 파노라마 덕분에 힘든 줄은 몰랐다. "산에 오르는 것은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감을 얻기 위함이다." 라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나는 정상을 향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해발 2,752미터의 라가주오이 산장. 그곳의 테라스에 서자, 발아래로 구름바다가 펼쳐지고 세상 모든 봉우리가 내 것이 된 듯한 황홀경에 빠졌다. 언어가 짧아 도저히 라가주오이 풍광을 표현한다는 것이 죄스러울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환상적인 풍경 앞에 나도 잠시 라가주오이의 돌이 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다른 여정을 모두 포기하고 이곳에서 며칠 보내고 싶었다. 이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지 못한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크로다 산장의 선물
기이한 다섯 봉우리 '친퀘토리'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렸다. 우장을 하고 걸을 수밖에..... 다음 코스로 이어지는 길은 비맞은 야생화가 반겨주고 키가 큰 낙엽송이 열병식하는 듯한 숲길이었다. 송어들도 한가롭게 노니는 페데라 호수가의 크로다 산장에 도착했다. 크로다 산장은 이번 여정 중 가장 목가적인 풍경을 선물했다. 목장도 돌로미티 풍경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는 듯했다. 투명한 호수 위로 크로다 암봉의 실루엣이 데칼코마니처럼 비친다. 몇 차례 장대비가 쏟아진 후, 조물주의 물청소로 해맑은 하늘이 열렸다. 그 순간, 저 멀리 트레치메 봉우리 위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그 황홀한 풍경 앞에서 나는 워즈워드의 싯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는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말라는 무지개의 가르침에 낡고 불편했던 산장의 밤은 그 찬란한 선물 하나로 깨끗하게 해소되었다.
돌산의 장엄함, 흙산의 정겨움
트레치메, 친퀘토리, 라가주오이 등등 그 이름도 모를 그 거대한 바위 성채 앞에서 나는 우리 땅의 산하를 떠올렸다. 돌로미티의 아름다움이 하늘을 찌르는 칼날 능선과 압도적인 규모로 보는 이를 전율케 하는 '돌산'의 장엄함이라면, 우리 산의 아름다움은 부드러운 능선이 겹겹이 이어져 마음을 어루만지는 '흙산'의 정겨움이 아닐까? 돌로미티가 장대한 교향곡이라면 우리의 산하는 구성진 가락의 판소리와 같다. 설악산의 기암괴석이 아무리 수려하다 한들 이곳처럼 하늘에 성벽을 두르지는 않았고, 지리산의 능선이 아무리 유려하다 한들 이곳처럼 나를 작은 점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낯선 땅의 위대한 아름다움은 역설적으로 내 나라 산하가 품은 다정함과 아늑함, 어머니의 품 같은 그 푸근한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했다.
길 위에서 함께한 사람들, 인생의 길벗
돌로미티에서의 6박 7일은 이국적인 풍경과의 만남만이 아니었다. '만난 기간 6개월, 쌓인 정은 60년'이라 표현하고픈 길벗들과 함께한 시간을 잊을 수 없다. 물처럼 맑고, 자연을 닮아 순수한 사람들. 우리는 다리가 절름거리기 시작할 때쯤 서로에게 기꺼이 어깨를 내주는 돌로미티의 길벗이 되어 인생길을 함께 걸었다.
산장에서의 저녁, 우리는 술잔을 높이 들어 살아온 날들의 묵은 찌꺼기를 비워내고, 살아갈 날들의 희망으로 잔을 채웠다. "위대한 일은 힘이 아닌, 인내로 이루어진다." 는 새뮤얼 존슨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기댄 인내로 이 길을 완주했다. 먼 훗날, 내 삶의 여정을 되돌아볼 때 돌로미티에서의 이 며칠은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발자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장엄한 바위와 여린 들꽃, 밤하늘의 별과 쌍무지개,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길벗들. 돌로미티는 내 영혼에 지워지지 않을 무늬를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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