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북인도 기행

경산 耕山 2025. 6. 7. 18:03

북인도 기행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고 있을 뿐이다.' 성 아우구스투스의 말이다.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여러 맹인이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며 코끼리의 전체를 논하는 것과 같다. 나 역시 장님의 코끼리 코 만지 듯 인도의 어느 한 부분을 더듬어 보았을 뿐이다. 지금 내가 만지고 있는 이곳은 과연 코끼리의 어디쯤일까? 그 거대하고 신비로운 실체 앞에서 할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얘기는 없는막막함, 인도 기행은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갠지스로 가기 위해 인도의 상징과도 같은 릭샤에 몸을 실었다. 편리하지만 더없이 불편한 이 기묘한 이동 수단은 인도의 첫인상을 온몸으로 각인시켰다. 엉덩이를 들썩이는 불규칙한 흔들림,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도시의 먼지, 귀를 찢는 경적의 소음, 코를 찌르는 지저분한 골목. 인도는 내 머리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들어왔다. 인도는 이성적 이해가 아닌 감각적 체험으로 먼저 다가왔다. 다시 오고 싶지 않지만 볼거리는 다양한 갠지스였다.
사람 반, 공기 반. 숨 막히는 인파 속에서도 순례자들의 행렬은 놀랍도록 여유롭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가장 편안한 얼굴을 한 사람들. 가난과 혼돈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도 삶의 모든 순간을 신에게 의탁하는 절대적인 신앙의 힘 때문일 것이다. 6천 년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듯한 힌두의 성지 바라나시는 그렇게 나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진정한 편안함은 환경이 아닌 마음에 있다는 것을.
새벽의 푸른 빛이 채 가시지 않은 갠지스 강가에서 나룻배에 올랐다. 밤새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던 도시의 소음이 물안개처럼 걷히고, 수평선 너머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른다. 갠지스의 일출. 그 황홀함에 숨을 멈추는 순간, 어제의 혼돈은 거짓말처럼 고요한 평화로 화답한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강물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강물에게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할 뿐, 과거나 미래의 그림자는 없다."
이곳 갠지스 강가에서는 삶과 죽음이 강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저편 화장터(가트)에서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강물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불꽃에 몸을 누인 시신이 고단했던 삶을 태우고 있다. 이승의 끝자락이지만 그곳에는 슬픈 눈물도, 처절한 통곡도 없다. 그저 강물이 흐르듯, 죽음은 갠지스의 일상일 뿐이었다. 해탈에 이르는 길 위에서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졌다. 화장터 건너편에서는 '바라나시의 인어공주들'이 요란한 자맥질을 한다. 탁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올리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로운 종교의식 그 자체였다. 시바의 땅 바라나시에서는 이렇듯 삶과 죽음, ()과 속(),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멀고도 가까웠다.

나의 여행은 델리에서 시작해 바라나시, 아그라를 거쳐 자이푸르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내가 본 인도는 거대한 팔레트 위에서 물감이 섞이듯 다채로운 색깔을 펼쳐 보였다. 델리의 심장부, 미로 같은 시장에서는 수백 년 된 모스크의 아잔 소리와 릭샤의 경적이 뒤섞이고, 공기 중에는 향신료와 짜이가 끓는 달콤한 증기가 가득했다. 무굴제국의 붉은 사암 성벽과 현대 인도의 고층 빌딩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며, 과거와 현재가 가장 치열하게 다투고 또 화해하는 회색빛 도시였다.
그 혼돈을 뒤로하고 도착한 바라나시는 온통 힌두의 깊고 성스러운 주황색이었다. 순례자들의 손에 들린 메리골드 꽃다발, 사두들의 몸에 걸친 누더기 옷, 그리고 화장터 가트에서 밤낮없이 타오르는 장작불빛. 수천 년의 기도가 켜켜이 쌓인 그곳의 주황빛은 삶의 치열함과 죽음의 경건함이 응축된 색이었다.
아그라에서는 인도의 모든 소음이 순백의 고요함 속에 잠기는 듯했다. 동틀 녘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타지마할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야무나 강 수면 위에 떠 있는 한 편의 시()이자 이슬람 예술이 빚어낸 영원의 순백색이었다. 그 완벽한 대칭과 고요함에 넋을 잃고 있다가도, 강 건너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아그라 요새를 마주하면 황제 사자 한의 강력했던 권력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이름 그대로, 도시 전체가 해 질 녘 노을처럼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백 개의 창문이 뚫린 '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의 정교함, 터번을 두른 상인들이 흥정하는 소리로 활기 넘치는 바자르, 그리고 그 사이를 누비는 화려한 사리를 두르고 활보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인도의 풍속화 같았다.

도시마다 인도의 색깔은 달랐다. 바라나시가 힌두의 깊은 주황색이었다면,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이슬람 예술의 순백색으로 빛났고,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도시들을 지나는 동안, 끝없이 밀려오고 한없이 밀려가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나는 아쇼카 왕의 석주과 모디 총리의 포스터를 동시에 보았고, 힌두 사원의 종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갓 구워낸 뜨거운 난을 뜯으며 진한 커리를 맛보고, 흙으로 만든 잔에 담긴 달콤한 라씨로 목을 축이는 그 모든 순간들이 바로 현재의 인도였다. 콧수염과 턱수염, 터번과 사리, 인도는 그 다른 모습들이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뒤섞여 팽이처럼 돌며 빛깔을 내고 있었다
인도의 찬란함 뒤에는 그림자도 뚜렷했다. 주인 없이 배회하는 소와 개, 염치없이 손을 내미는 거지들, 그리고 빈틈없이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 이 모든 것이 뒤섞여 돌아가는 거대한 카오스도 보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모든 불편함은 갠지스의 느릿한 흐름 속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수만 가지 색상의 실을 한데 엮어 만든 거대한 태피스트리처럼, 인도는 그 혼돈마저 오색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보였다.

인도 기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나는 여전히 내가 만진 것이 코끼리의 어느 부분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신앙이라는 단단한 다리였을 수도, 가난이라는 거친 피부였을 수도, 역사라는 거대한 몸통이었을 수도 있다. 인도 여행을 마친 마크 트웨인은 인도를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인도는 인류의 요람이며, 인간 언어의 탄생지이고, 역사의 어머니이자, 전설의 할머니이며, 전통의 증조할머니다." 어쩌면 인도는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거대한 존재 그 자체일지 모른다. 나는 코끼리의 전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슴에 남은 그 감촉과 온기가 내 삶의 가장 강렬한 페이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막 그 첫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갠지스강변의 인파
갠지스의 일출
타지마할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의 왕궁
인도 왕궁의 밥상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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