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山 天池에서
"천지(天池)"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곳이 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고요히 물을 담고, 세상의 모든 시름을 감당할 듯한 신비로운 호수. 내 마음속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푸른 감동이 간직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또 다른 천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천산(天山) 산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보석, 천지가 또 있다하니 어떤 풍경인지 궁금했다.
서안에서 시작한 8박 9일 실크로드 마지막 여정은 천산 천지였다. 천산산맥의 만년설 그 정점에 서왕모의 목욕탕, 천산 천지가 있다. 우루무치를 벗어나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자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황량하던 대지는 어느새 짙푸른 침엽수림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공기는 차갑고 맑아졌다. 해발 약 2,000미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천산 천지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만년설을 병풍처럼 두르고, 에메랄드빛 호수는 거울처럼 설산과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 호수가 중국 신화 속 서왕모(西王母)가 잔치를 열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라 했던가. 그 신화적 배경 때문인지 호수는 더욱 신비롭고 아득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듯했다. 유람선이 하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때, 호수 주변을 둘러싼 가문비나무 숲은 더욱 짙고 깊은 초록으로 빛났다. 호숫가를 거닐며 바라보는 풍경은 각도에 따라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어떤 곳에서는 설산의 위용과 호수의 평온함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고, 어떤 곳에서는 숲과 물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 맑고 투명한 물빛은 마음속까지 정화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천산 천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자연스레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지난 해 가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백두산.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 펼쳐졌던 천지의 광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천산 천지가 여성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백두산 천지는 좀 더 원시적이고 장엄한 남성적 기운을 뿜어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물빛은 경외감마저 자아냈다.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잠깐씩 얼굴을 내밀던 천지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고 강렬했다. 주변을 둘러싼 날카로운 16암봉은 마치 천지를 지키는 호위무사들처럼 늠름했다. 그곳에는 단군 신화의 자취와 우리 민족의 숨결이 서려 있어, 단순한 자연경관 이상의 벅찬 감동과 숙연함을 안겨주었다.
두 천지는 저마다 독특한 매력으로 빛났다. 천산 천지가 고산준령과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알프스의 호수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백두산 천지는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채 거칠지만 웅장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물빛 또한 천산 천지가 햇살 아래 반짝이는 옥빛이라면, 백두산 천지는 하늘의 깊이를 담은 듯한 진한 코발트블루에 가까웠다. 천산 천지가 서왕모의 신화로 신비감을 더한다면, 백두산 천지는 우리 민족의 시원이자 성지로서의 무게감을 지닌다.
하지만 두 천지는 '하늘 아래 호수'라는 이름처럼 닮은 점도 많았다. 인간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높은 곳에 위치하여 태고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인간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는 점이다. 천산 천지의 유람선 위에서, 그리고 백두산 천지의 전망대에서 느꼈던 자연 앞에서의 겸허함은 다르지 않았다.
천산 천지를 뒤로하며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천산의 거울과 같았던 천지의 모습과 백두의 깊은 눈동자를 닮은 천지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서로 다른 매력이지만, 하늘과 땅과 인간을 이어주는 듯한 그 신성한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삶의 여정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며 작은 위안과 깊은 성찰을 안겨줄 것이다.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일강의 추억 (9) | 2025.06.09 |
|---|---|
| 북인도 기행 (8) | 2025.06.07 |
| [실크로드] 우루무치 가는 길 (9) | 2025.05.31 |
| [실크로드] 혜초를 찾아서 (2) | 2025.05.30 |
| [실크로드] 월아천(月牙泉) (2) | 2025.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