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 가는 길
돈황의 황홀한 막고굴과 명사산의 감동을 뒤로 하고, 유원역으로 향했다. 우루무치로 향하는 서역 여정을 위해 고속철도에 설레는 마음을 실었다. 여기부터는 감숙성이 끝나고 신장위구르자치구다. 그야말로 변방으로 나가는 서역 땅에 들어선 것이다. 거친 사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지루한 사막의 풍경을 어찌할 것인가? 자갈에 덤불 사막은 정녕 쓸모가 없는 땅이란 말인가? 사막은 아직 쓸모를 찾지 못한 땅이었다. 중국은 사막에서 쓸모를 찾아냈다. 중국은 유원과 선선에 이르는 지역에서 석유를 찾아냈다. 유원과 선선은 석유가 만들어낸 사막의 신도시였다.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돈이 흘러넘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를 고집하는 이유를 현지에 와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나는 과거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이 길을 걸으며 느꼈을 설렘과 두려움을 상상해보았다. 기차에서 읽은 唐詩 중에서 왕지환(王之渙)의 시 "출새(出塞)" 한 구절이 서역으로 가는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다.
“春風不度玉門關(춘풍부도옥문관) 봄바람조차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 것을.”
옥문관 너머, 더욱 낯설고 광활한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이들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용기 있는 자만이 죽음의 땅으로 가는 옥문관을 넘었으리라. 그들은 이 험난한 길을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동서양의 문화를 교류한 것이다.
해 저물녘 선선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에는 분수가 있는 호텔 정원에서 양꼬치구이 파티가 벌어졌다. 하루하루 경이롭고 끼니마다 감미롭다. 푸짐한 양꼬치는 술안주로 그만이었다. 갓구워낸 양꼬치의 고소한 맛과 향은 애주가가 아닌 일행까지 아까운 술을 축내게 만들었다. 이 지방 맥주와 준비해간 소주와의 만남은 긴 여정에 지친 나그네에겐 그야말로 달콤한 기쁨이었다. 목월 시인의 ‘나그네’가 오늘 저녁 상황을 고스란히 대변해 주었다.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술 익는 마을'에서 풍요롭고 정겨운 나그네의 휴식을 오래 전부터 동경해 왔다. 익어가는 술 내음과 함께 저녁놀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풍경 속에서 평화롭고 여유로운 내 삶의 한 때를 맞이하고 싶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나그네의 소박한 꿈이 머나먼 실크로드 어디쯤에서 이루어지다니 참으로 값진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선물 받은 기분으로 일행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란 내용을 술잔에 담아 건배사를 선창했다.(“인생을! 즐기자!”) 나는 오늘 자연스럽게 위시 리스트를 하나 해결한 셈이다. 그 옛날 서역 상인들도 여기 오아시스에서 안락한 휴식을 취하며 두고온 고향을 그리워했으리라.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쿠무타크 사막이 일출 명소라고 한다. 짚차를 탔다. 짚차는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사막의 언덕을 질주한다. 운전기사는 몇 번의 곡예운전으로 스릴 서비스를 한다. 사막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그 장엄한 광경에 취해 나는 아침의 태양을 두 손에 담아 삼켜버렸다. 내 안의 태양이 내 삶을 좀더 뜨겁게 데우고 좀더 밝게 빛을 내주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사막의 모래는 황금빛으로 빛났고, 바람에 의해 형성된 모래언덕 능선들은 가늘고 섬세했다. 멀리 오아시스 도시 선선이 서서히 깨어났다. 맨발에 닿는 고운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모래능선을 따라 마냥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선선을 떠나 투르판으로 가는 길에는 고창고성과 베제크리크 석굴을 답사했다. 고창고성은 오랜 세월 동안 시간 속에 묻혀 있던 도시의 흔적을 폐허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은 한때 번성한 왕국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황성 옛터일 뿐이다. 복원된 성벽과 궁전의 잔해는 그런대로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했고, 그 사이를 전동카로 달리며 역사의 무상함을 느꼈다.
杜甫의 "春望"에 나오는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는 부서졌어도 산하는 그대로인데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성 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
라는 구절처럼, 찬란했던 도시는 간데없고 부서진 성터 위로 세월의 더께만 쌓인 고창고성. 현장 스님이 설법을 했다는 조그만 법당 안에는 이 지역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하고 있었다.
서유기의 배경 화염산이 나타났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화염산은 경이로웠다. 불꽃 모양도 보이고, 깊은 주름이 만두 모양 같기도 하다. 높낮이에 따라 저마다의 고유한 자태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한 이름 모를 봉우리들. 가파른 모래 언덕에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화염산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확인해주었다. 처음보는 색다른 풍경이었다. 이 산은 낮에는 태양열을 흡수해 붉은색을 띠지만, 밤에는 그 열을 방출하며 차가운 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 자연 현상은 옛날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했고, 많은 전설과 신화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화염산의 경이로움은 과학적으로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는지였다. 베제크리크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화염산 기슭, 맑은 시내가 흐르는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베제크리크는 막고굴보다 규모가 작은 석굴 사원이었다. 한 줄기 시냇물 흐르는 소리 청량하고 반갑다. 수많은 상인과 순례자들이 안녕을 기원하며 이곳에서 쉬어갔겠다. 하지만 지금은 훼손되어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일본의 도굴단이 훼손한 석굴도 보았다. 이들이 도굴한 유물 몇 점을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제국의 문화침탈 현장을 보고 나오면서 일제의 우리 문화재의 약탈까지 겹쳐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푸른 초원이 나타나고 나무숲이 이어진다. 포도밭이 끝없다. 포도건조장 구조물이 많이 보였다. 이곳이 투르판이란다. 사막 한가운데 저지대 평원에 농산물이 넘쳐났다. 물산이 넉넉한 고장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이 고장 특산 과일 하미과를 맛보았다. 우리나라의 멜론과 같은데 물이 많고 달콤한 청량감이 좋았다. 가격도 저렴해서 하미과로 배를 채웠다. 상인들의 얼굴 생김새도 다르다.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족이다.
투르판의 답사지 카레즈를 탐방했다. 이 지하 수로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지혜로워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카레즈는 수천 년 전, 이 지역의 사람들이 건조한 기후 속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인공 수로 시스템이다. 이 수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지하로 흐르게 하여 도시까지 안전하게 공급했다. 물처럼 순응하면서도 생명을 키우는 투르판 사람들의 지혜가 이 지하 수로에 담겨 있는 듯했다. 인간의 지혜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 나는 카레즈 앞에서 청산도 농민들의 지혜가 남긴 구들장논을 떠올려 보았다. 이러한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마지막 목적지인 우르무치로 향하는 길에는 멀리 천산산맥 만년설을 머리에 두른 준봉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넓게 펼쳐진 목장이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푸른 목장에서 풀 뜯는 양떼와 소떼들이 한가롭다. 사막 곳곳에 쉬지 않고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수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어머어마했다. 중국의 사막은 이렇게 또 하나의 전력공급처로 쓰이고 있었다. 중국은 넓고 크고 많다. 청나라의 여행가 서하객은 “중국에서 나는 음식 다 못 먹어보고 중국 땅을 다 못 밟아보고 중국글자 다 못 익힌 것”이 평생의 한이 된다는 말에 살짝 공감을 했다.
아득한 초원, 끝없는 사막의 오아시스 우루무치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우루무치는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이라고 했다. 오늘의 우루무치 아름다운 목장 대신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강력한 치안 유지를 위해 도심 곳곳에 장갑차 탄 무장군인들의 배치가 눈에 띄었다. 섬뜩한 두려움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이곳에서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이드는 당부를 했다. 우루무치의 울분은 수면 아래로 갈아 앉은 채 도시는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목장에 자유와 평화가 깃들기를 나그네는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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