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를 찾아서
명사산 동쪽 끝자락
아침 햇살 백양나무숲에 스며들면
돈황의 심장
막고굴 천불동이 열린다
17번 굴 서늘한 어둠
왕오천축국전이 깨어난 골방
스님의 그림자 어른거리고
사막길 적신 묵향이 짙다
천축국 돌고돌아
페르시아 아라비아까지
망망한 바닷길로 갔다가
황량한 비단길로 돌아왔지
계림의 순례자
작은 발걸음 이어져
죽음의 땅 이정표가 되고
거대한 발자국으로 남았지



혜초(慧超, 704-787)는 신라인으로 16세 때인 선덕왕 18년(719년) 당나라로 들어갔다. 719년 당나라 광주(廣州)에 도착하여, 남천축 출신의 밀교승 금강지(金剛智 669-741)를 만나 그를 사사(師事)했다.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에 광주를 떠나 스승이 건너온 바닷길을 거꾸로 잡아 폐사리국( 현재 인도 동북부 바이샬리)에 도착하여, 갠지스 강을 따라 바라나시∙카슈미르∙페르시아 지방 등 인도와 아랍 일대를 순유하고, 727년 11월 상순에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소재지인 구자(龜慈; 현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Kucha)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혜초가 이동한 경로는 육로로만 1만km가 넘고 기간은 장장 4년에 걸친 멀고 긴 여정이었다. 혜초는 고행을 자초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이문명(異文明)에 대한 기록을 남긴 위대한 여행자요 순례자였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인 8세기 초반에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은 13C 후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C 초반 오도릭의 <동유기>, 14C 중반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도 손꼽힌다.


1906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 Peiliot, 1878~1945)는 우연히 우루무치에서 유배된 관리로부터 돈황 막고굴의 장경동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그는 1908년 2월 일행 세 명을 이끌고 돈황 막고굴에 도착하여 장경동의 유물들을 세밀히 탐색했다. 5월 12일 밤, 펠리오는 왕원록에게 은자 500냥을 주고 장경동에 있는 6600여 권의 고문서, 당대(唐代) 회화, 번당(幡幢), 직물, 목제품, 목활자, 법기(法器) 등을 넘겨 받아 파리로 보냈다.
펠리오가 프랑스로 반출한 고서 가운데 하나가 혜초의<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다. 이 여행기는 세로 28.5cm, 가로 358cm로 총 227행 5893자가 남아 있는 두루마리에 적힌 필사본으로, 발견 당시 앞뒤가 떨어져 나간 상태로 책명도 저자명도 알 수 없었다. 발견된 지 7년 후인 1915년 일본 학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에 의해 저자인 혜초가 신라 출신의 승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28년에는 독일의 사학자 푹스(Fuchs,W.)는 왕오천축국전을 독일어로 번역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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