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실크로드] 黃河의 품에 안기다

경산 耕山 2025. 5. 28. 14:58

黃河의 품에 안기다

천수(天水)에서 맥적산 석굴 답사를 마치고 난주(蘭州)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중국의 관광 인프라가 10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발전했다.  한적한 6차선 고속도로 위의 최고급 리무진 버스를 타고 달린다. 그런데 속도는 시속 80Km로 제한되어 있다. 과속 주행에 길들여진 우리 운전관습으로 볼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여행자가 차창 밖을 여유롭게 감상하기에는 이 속도가 적당하다. 난주로 가는 길은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천수를 벗어나면서 점점 나무들이 사라지더니  키 작은 덤불들만 나타난다. 게다가 건조한 고원의 황사는 마치 산을 점령한듯 햇빛을 차단했다. 황사의 고장에서 황사의 실체를 경험했다. 황사 먼지로 인해 하늘은 탁하고 어둡고 산들은 그 윤곽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원앙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을 때, 시야가 제로가 되는 순간, 황사비가 내리고  자연의 위력에 인간은 순응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4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산은 여전히 가파르고 나무들은 볼 수 없었. 나무숲은 우리 산하와는 달리 평지나 강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력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고원의 먼지를 뚫고 백양나무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황하 유역의 중심지 영정현에 도착했다
. 회색지대를 지나 녹색지대에 위치한 영정현은 여전히 황사로 인해 하늘이 탁하고 어두웠다. 어제는 위수를 보았고 오늘은 '황하'를 만나는 날이다.   숙소로 이동하는 중에 다리를 건너며 중국 문명의 젖줄, 황하를 마주했다. 역사 속 황하는 언제나 거대했다.  문명의 요람으로, 때로는 범람하는 강으로, 늘 격동하는 중국사의 중심에 있었다. ‘중국의 어머니라 불리는 황하를 나는 언제부턴가 하나의 신화처럼 생각해왔다. 내 머릿속에선 황하는 누런 흙탕물이 굽이치고, 우왕(禹王)이 치산치수(治山治水)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 황하를 나는 이제서야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튿날, 다행히 황사 없는 청명한 날씨다. 다양한 날씨를 경험하는 것도 여행이 주는 또하나의 선물로 생각한다. 황하석림(黃河石林) 으로 가기 위해 유가협(劉家峽)에서 배를 탔다. 유가협은 황하를 가로막은 댐이다. 장강의 삼협이 황하에서는 유가협인 셈이다. 황하는 거대한 용처럼 꿈틀대는 황토빛 물결이 아니었다. 유가협의 황하는 재해를 몰고 오는 거친 자연이 아니었다. 잔잔한 호수와도 같이 도도한 흐름을 멈춘 듯 보였다. 부드러운 강바람은 어느새 얼굴을 어루만지고, 배는 굽이굽이 협곡 사이를 누비며 달린다.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고요하다가도, 어느 순간 수직으로 솟은 절벽이 눈앞을 막았다가, 다시 평온한 강 안이 펼쳐졌다. 황하가 스스로 이야기라도 들려주는듯, 그 흐름은 서사적이었다. 서사적 흐름 위의 작은 배는 한 줄기 붓이었고, 나는 그 끝에 앉은 작은 점일 뿐이었다.
황하석림 앞의 강물은 조용하고, 주변 풍경은 別有天地였다. 물빛은 생각보다 맑았고, 황토색이라기보다는 흙빛에 가까운 누르스름한 회갈색이었다. 넓은 강폭과 유장한 흐름, 무엇보다 석회암 지형은 인간의 글과 그림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수려함이었다. 황하의 물길이 수만 년 동안 암석을 침식시켜 지금의 장관을 빚어낸 것이다. 산에다 직접  돌로 된 궁전을 세운 듯,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자연스럽게 줄지어 서 있다. 바람이 깎고, 물이 다듬은 시간의 조각들. 돌기둥마다, 침식된 골짜기마다 조물주의 숨결이 배어 있는 듯하다. 그 긴 시간 앞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는 문득 자연도 글을 쓴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의 바위들은 모두 글자 없는 문장들이었다. 그저 감탄과 침묵으로 현란한 안복을 누릴 수밖에......

병령사 석굴로 이어진 길은 정겨운 곡선 산책길이다. 길을 따라 이리저리 돌다보면 수직 절벽도 만나고 바위 틈새도 빠져나가고 거대한 돌기둥이 반겨주는 재미있는 길이다. 석굴이 자리한 지리적 환경은 황하가 빚어낸 깎아지른 듯한 붉은 사암 절벽이다. 뱃길이 닿기 이전에 이곳은 속세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자기성찰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겠다. 불상보다도 더 기이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지며, 황하의 거친 물살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한무제가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개척한 실크로드  요충지에 신앙으로 돌꽃을 피웠다. 황하의 물길 위에  인간의 의지와 종교적 신념이 빚어낸 문명의 꽃을 피웠다. 석굴은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었다. 석굴을 조성하는 과정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행의 연속이었으리라. 황량한 자연환경은 오히려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했을 것이며, 강물의 도도한 흐름은 시간의 유한함과 그 속에서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을 되새기게 했을 것이다. 척박함과 장엄함이 공존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은 신을 향한, 혹은 구도를 향한 갈망을 바위 위에 새겨 넣기 시작했으리라. 아찔한 절벽에 매달려, 혹은 어두컴컴한 굴 속에서 등불 하나에 의지해 섬세한 조각을 이어갔을 이름 모를 석공과 스님들. 그들의 거친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을 탄생시켰고, 그들의 땀방울은 황하의 물줄기처럼 오랜 세월 이곳에 스며들었다.
지배자는  불교를 통해 민심을 얻었고, 서역을 오가는 대상들은 안전과 평화를 기원하며 석굴사원에 시주하고, 그곳에는 불상이 만들어졌으리라.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고역인 이 험한 길을 몇 년에 걸쳐 구도의 길을 걸어간 스님들과 대상들의 위대함에 잠시 숙연해졌다.
  비록 신앙은 없을지라도 석굴을 조성한 불심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황하에 손을 담가보았다. 문헌 속의 황하와 눈앞의 황하는 달랐고, 그러면서 동시에 같았다. 책 속에선 위대한 문명의 상징이었고, 지금 내 눈앞에선 말없이 흐르는 대지의 젖줄이었다. 황하는 이제 나의 문장 속에서도 작은 소리로 흐르게 되었다.

병령사 석굴 입구 황하석림
티벳스님들도 답사를 왔다.
병령사 석굴 가는 길, 재미가 있다.
병령사 석굴 사원, 우기 때는 석굴 앞까지 물이 찬다.
자매봉이란다. 방향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
병령사석굴 제171굴 미륵대불, 풍우에 마모되어 복원한 모습이다.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석굴사원
'병령(炳靈)'은 티베트어로 '십만 불(十萬佛)'을 의미하며, 그 이름처럼 병령사 석굴에는 수많은 불상과 벽화가 장구한 세월 동안 조성되었다. 석굴의 역사는 서기 420년경 서진(西秦)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북위, 수, 당, 송, 원, 명, 청대에 이르기까지 천년 이상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황하, 유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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