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루 앞에서
안의의 오래된 길 끝
물소리 따라 선 누각
광풍루(光風樓)
풍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세운 자리
일두의 뜻이 머물고
우암의 글이 걸리며
연암은 여기서
시보다 물레방아를 생각했다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바람과 달빛
끝내 닮아야 할
한 사람의 마음이다


광풍루에서 연암을 만나다
함양군 안의면으로 들어서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산은 멀리서 둥글게 마을을 감싸고, 들은 낮게 숨을 고르며 봄빛을 품고 있었다. 오래된 고을이란 늘 그렇듯, 화려하지 않은 대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길 끝에 광풍루(光風樓)가 있다. 누각은 생각보다 단정했다. 지나치게 위엄을 내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낮추지도 않았다. 오래된 나무기둥과 단아한 처마선, 그리고 그 아래를 스치는 바람까지도 마치 제자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관리 상태는 깨끗하고 정갈했지만, 막상 누각 위로 오르는 계단은 폐쇄되어 있었다. 가까이 있으나 쉽게 오를 수 없는 거리. 아쉬움은 늘 답사의 일부가 된다.
광풍루. 이 이름은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왔다. ‘비가 갠 뒤의 맑은 바람과 깨끗한 달빛.’ 이것은 아름다운 경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광풍제월은 사람이 닮아야 할 마음의 날씨였다. 한 점 흐림 없는 마음, 사사로움에 젖지 않는 정신,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를 비출 수 있는 삶. 안의의 광풍루는 바로 그 뜻을 품고 서 있다.
이 이름을 붙인 이는 영남 사림의 거봉이었던 일두 정여창이라 전한다. 그는 누각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지켜야 할 정신의 높이를 보았을 것이다. “비가 개인 뒤 부는 시원한 바람처럼 마음속에 한 점 부끄러움과 막힘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훗날 우암 송시열이 남긴 [광풍루기]의 한 구절이다.
누각은 나무와 기와로 세워지지만, 그 이름은 사람의 뜻으로 완성된다. 그 뜻은 조선 후기, 한 사람의 실학자에게 이어진다. 연암 박지원이다. 그는 1791년, 쉰다섯의 나이에 안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늦은 관직이었다. 배경에는 정조의 문체반정이 있었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의 문장은 당대 문장의 규범을 흔들었고, 정조는 이를 경계하고 반성을 명령했다. 정조는 동시에 그의 재능을 버리지 않았다. 중앙정치의 논란에 휘말리는 대신 지방의 현실 속에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천하도록 배려했다.
정조는 그에게 반성문을 요구했지만, 연암은 말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그는 광풍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백성의 삶을 바꿀 설계를 구상했다. 그의 풍류는 '이용후생(利用厚生)' 그 자체였다. 청나라에서 눈여겨보았던 기술을 바탕으로 안의현 안심마을에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를 설치했고, 베틀을 개선하며 벽돌과 수레를 도입했다. 연암에게 광풍루는 집무실이자,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가장 뜨거운 실험실이었다.
광풍루는 민본주의적 풍류가 서린 곳이다. 광풍루의 풍류는 술 한 잔과 시 한 수로 끝나는 삶의 여백이 아니라, 백성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게 하는 풍류였다. 그는 광풍루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신분의 높고 낮음을 넘어 대화를 나누었다. 그 담론은 잡담이 아니라 조선의 내일에 대한 토론이었다.
"관아의 뜰에는 잡초가 우거져도 백성의 얼굴에는 웃음이 돌아야 한다."
목민관 연암의 애민정신이다. 나는 닫힌 계단 아래에서 한동안 누각을 올려다보았다. 오르지 못한 누각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남긴다. 광풍루는 발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올라가야 연암을 만날 수 있다는 듯이. 연암은 달랐다. 광풍루 안뜰에 많은 송덕비 중에 연암의 송덕비가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 사연을 알고 보면 연암의 품격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광풍루는 지금도 풍경 좋은 누각으로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곳은 일두 정여창의 뜻이 시작되고, 우암 송시열의 정신이 새겨지며, 연암 박지원의 실천이 살아 움직였던 자리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아래, 한 시대의 선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던 장소다. 오늘의 우리는 어떤가. 비는 자주 오고, 마음은 쉽게 흐려진다. 말은 많아졌지만 뜻은 가벼워지고, 풍요는 늘었지만 부끄러움은 오히려 사라지는 시대를 산다. 광풍제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풍제월은 경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닮아야 할 마음의 날씨를 말한다.
비 갠 뒤의 바람과 달빛처럼 한 점 흐림 없는 선비의 마음, 그것이 광풍제월이다.
광풍루는 묻고 있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날씨는 맑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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