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서 부르는 졸업가
청산 바람에 울려 퍼지던
눈물의 합창
빛나는 졸업장 뒤에
남겨진 서러운 꿈
동학의 하늘 에서
피어난 동요의 꽃
오선지 위에 새긴 마음
메마른 길 위에서
그 시절의 노래가
낮은 곳으로 메아리친다




잃어버린 선율의 뿌리를 찾아
- 청산에서 부르는 눈물의 졸업가
충북 옥천군 청산면, 보청천의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그곳을 거닐면 낮은 담장 너머로 환청처럼 익숙한 선율이 들려오는 듯하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던 그 노래. 이제는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나에게 이 노래는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했으나 뜨거웠고, 서러웠으나 눈부셨던 나의 유년기가 통째로 담긴 '시대의 눈물'이었다.
기억 속의 졸업식은 늘 '울음바다'였다. 코 묻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재학생들이 선창을 시작하면, 답가를 부르던 졸업생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3절에 이르러 재학생과 졸업생의 목소리가 하나로 섞일 때쯤이면, 식장은 이내 거대한 통곡의 합창단으로 변모했다.
그 시절, 학교는 오늘날의 배움터 그 이상이었다. 특히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시절, 영리했던 여자 친구들에게 초등학교 졸업은 '꿈의 종언'이기도 했다. 중학교 교복 대신 도시 공장의 작업복을 입어야 했던 친구들, 동생의 학비를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던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노래 가사처럼 "잘 있거라 아우들아"를 차마 끝맺지 못하고 눈물울 닦았다.
당시에는 그저 노래가 좋아 울었고, 곡조가 슬퍼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그 애달픈 선율을 빚어낸 이가 이 땅 청산의 인물, 정순철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선생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로 태어난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젖줄처럼 먹고 자랐다. 소파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운동에 투신했던 그의 행보는, 종교적 신념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작고 낮은 존재인 '어린이'를 하늘처럼 받들고자 했던 실천적 인물이었다. 6.25 전쟁 중 납북되어 긴 세월 이름조차 불리지 못했던 작곡가. 하지만 그가 남긴 <졸업식 노래>와 <짝짜꿍>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 우리 민족의 정서적 DNA가 되었다. 선생은 떠났어도 그가 심은 '어린이 사랑'의 마음은 여전히 나의 귓가에 머물러 있다.
청산의 들녘을 거닐며 자문해 본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끼니를 걱정하며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친구들의 아픔은 사라졌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오히려 예전보다 메말라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정순철 선생이 오선지 위에 새긴 것은 단순한 음표가 아니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밭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듯, 사람의 마음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선생이 나에게 남긴 숙제이리라.
이제 다시 그 노래를 나직이 불러본다.
옛 동창들의 얼굴이 보청천 맑은 물 위로 은비늘처럼 부서진다. 가난했지만 정이 깊었던 그 시절의 울음소리가, 각박해진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하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길 위에 새겨진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내가 잊었을 뿐이다. 청산의 바람 속에 실려 오는 선생의 선율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사랑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묻고 있다.'

졸업가
- 윤석중 작사/정신철 작곡
1절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 잘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2절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힘을 길러서
새 나라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가다가 다시 만나세
'인문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누정기행7 안동 만대루(晩對樓) (7) | 2026.05.11 |
|---|---|
| 누정기행6 보은 고봉정사(孤峰精舍) (5) | 2026.05.04 |
| 누정기행5 안의 광풍루(光風樓) (17) | 2026.04.27 |
| 누정 기행4 안의 거연정(居然亭) (10) | 2026.04.20 |
| 누정 기행3 부여 수북정(水北亭) (11) | 2026.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