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高水長
- 고봉정사를 지나다가
잠긴 문 앞
발걸음이 멈춘다
담장 너머
시간은 안으로만 흐르고
피의 계절을 건너온 이름들
나무 기둥에 결을 남기며
침묵으로 서 있다
처마 끝 바람이
한 획씩 읽는다
山高
水長
높아지지 못한 몸은
봉우리가 되고
흐르지 못한 길은
물이 되었으리
문은 닫혔으나
뜰은 열려
냉이와 씀바귀의 시간
낮게 엎드린 봄풀들이
더 오래 향기롭다


1678년(숙종 4년) 가을 무렵, 당시 능성 구씨 문중에서 임진왜란 때 불탄 정사를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장기(포항)에서 유배 중이던 우암 송시열을 찾아가 이 편액 글씨를 직접 받아왔다고 전해진다. 송시열 특유의 호방하고 힘 있는 서체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예서체(隸書體)의 기운이 섞인 독특한 필치로, 이유원 특유의 단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서풍을 보여준다. 고봉정사 정면에는 우암 송시열의 '고봉정사' 편액이 있고, 측면에는 귤산 이유원의 '산고수장' 편액이 함께 걸려 있어 정사의 격조를 높여주고 있다.

외로운 봉우리의 여운 '山高水長'
충북 보은군 관기에서 청산으로 이어진, 마을 길을 지나다 보면 세월의 속도에서 비껴선 듯한 고봉정사(孤峰精舍)가 그 고요한 자태를 드러낸다. 기묘사화라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폭풍을 피해 이곳으로 스며들었던 선비들의 고결한 뜻을 반추하며 정사 앞에 선다.
굳게 닫힌 정사의 문은 답사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현재는 내부를 개방하지 않아 담장 너머로 훔쳐볼 뿐이지만, 오히려 그 단절이 이곳을 지켰던 이들의 '은거(隱居)'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은 고봉정사는 조선 중기 사림의 교유와 학문적 열기가 서린 공간이다. 원정 최수성 선은 기묘사화 후 낙향하여 고봉정을 세워 김정·구수복과 함께 시를 읊으며 후학을 강학했다. 충암 김정은 문과 장원으로 관직에 올랐으나 향약을 실시하고 미신을 타파를 강조했고, 병암 구수복은 사화로 파직된 뒤 은거하여 학문에 몰두하며 후진을 길러냈다. 이들이 남긴 구체적 시문은 전하지 않지만, 고봉정사에서는 서로 도의로 사귀며 학문을 토론하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후대에는 우암 송시열이 친필로 현판을 남겨 고봉정사가 사림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는 상징적 장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때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드나들며 거문고 소리와 학문적 담론이 끊이지 않았을 정자는 이제 낡고 바스러진 나무의 질감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퇴락함은 결코 초라함이 아니다. 장식된 화려함은 세월 앞에 속절없으나, 낡은 기둥 속에 배어든 선비의 기개는 시간이 흐를수록 골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문은 잠겨 있고 정자는 기울었어도, 이곳을 감싼 공기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고봉(孤峰)'이라는 이름처럼, 세속이라는 거대한 산맥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우뚝 서고자 했던 그들의 고독한 자부심이 낡은 목재 사이마다 촘촘히 박혀 있는 까닭이다.
퇴락하여 기운 처마 아래를 살피다 보면 빛바랜 편액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흐른다'는 이 네 글자는 고봉정사가 품은 정신적 가치를 압축적으로 웅변한다. 험난한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선 선비의 지조는 '높은 산'이 되었고, 벼슬길이 막혔어도 쉬지 않고 학문을 닦으며 도(道)를 이어나간 의지는 '긴 물줄기'가 되었다. 고봉정사의 이름인 '孤峯(외로운 봉우리)'은 '山高'의 의미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세속과 단절된 고독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추구했던 정신적 고결함은 '산처럼 높았고', 그 정신이 만들어낸 학문의 흐름은 '물처럼 길게' 이어져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닿아 있다. 인간이 만든 목조 건물은 낡아 가지만, 그 속에 새겨진 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투명하고 단단해진다.
정작 정사 안의 시간은 멈춘 듯 보이지만, 앞뜰은 지금 생명력으로 술렁인다. 발밑에는 냉이와 씀바귀가 지천으로 돋아나 연두색 봄을 토해내고 있다. 화려한 꽃 대신 땅에 바짝 엎드려 향기를 품는 냉이는 평생 처사(處士)로 살았던 성운의 삶을 닮았고, 혀끝을 자극하는 씀바귀의 쌉싸름한 맛은 시대를 먼저 읽었으나 끝내 꺾여야 했던 기묘 명현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는 정자를 쇠락하게 만들고 문을 걸어 잠갔지만, 대지는 잊지 않고 다시 봄을 길러냈다. 뜰 가득 피어난 봄나물들의 생명력은 마치 "진정한 정신은 갇히거나 낡지 않는다"고 말하는 살아있는 문장과 같다.
잠긴 문 앞에서의 아쉬움은 이내 숙연함으로 바뀐다. 낡은 정자와 푸른 봄풀의 대비, 그리고 처마 아래 빛나는 '山高水長'의 정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비록 정자의 서까래는 내려앉고 있을지언정, 그 앞뜰에 매년 돋아나는 냉이와 씀바귀의 향기처럼 고결한 정신은 오늘도 이 고즈넉한 보은의 들녘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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