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의 빈자리
봄빛 번지는 수북정
꽃샘바람 차갑다
빈 정자에
시판(詩板)만 즐비한데
풍류의 주인공인
수북과 상촌은 없다
자온대 아래
우암의 묵향
강물 따라 흘러간다






백마강에 띄운 선비의 지조
부여 백마강가 절벽 위에 자리한 수북정(水北亭)은 조선 광해군 때 양주 목사를 지낸 수북 김흥국(金興國, 1557~1623)이 세운 정자다. 김흥국은 인조반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결개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 정자를 지었다. 자신의 호를 따 ‘水北’이라 명명한 것은 세속의 명리에서 벗어나 물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살겠다는 지조와 은거의 철학을 반영한다.
정자의 이름에 담긴 ‘물 수(水)’ 자에는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사상과, 흐르는 물을 보며 마음을 씻는 세심(洗心)의 태도가 투영되어 있다. 또한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되 정자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듯,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도덕적 중심(부동심)을 지키고자 했던 선비의 의지도 보여준다.
정자 아래 자온대(自溫臺) 바위에는 백제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백제 왕이 강 건너 왕흥사로 행차할 때 이 바위에서 잠시 쉬어가곤 했는데, 왕이 앉을 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졌다 하여 ‘자온대’라 불리게 되었다. 바위에 새겨진 우암 송시열의 ‘自溫臺’라는 글씨는 백제의 온기와 조선의 유교적 가치가 조우하는 지점이다. 이곳에 서면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수북정에서는 부여의 젖줄인 백마강을 굽어보며 강 건너 멀리 낙화암이 보인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백제 멸망의 현장은 선비들에게 흥망성쇠의 무상함을 일깨워주는 거울이 되었으리라. 정자 벽에 붙은 수많은 시문(詩文)은 과거의 비극적 역사를 현재의 도덕적 수양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고뇌의 산물들이다.
수북정은 부여팔경 중 하나인 ‘수북정 청람(靑嵐)’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강 위로 피어오르는 푸른 아지랑이는 정자와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풍경의 묘미를 아름답게 드러낸다. 따라서 이곳은 문인들이 모여 시를 읊고 풍류를 나누던 지식인의 사랑방이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상촌 신흠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팔경시판(八景詩板)’을 남겼다고 한다. 수북과 상촌은 광해군 시절의 정국 혼란 속에서도 도덕적 지조를 함께 나누었던 각별한 지기였다. 수많은 시판 중에 수북과 상촌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이 남긴 시문의 행방을 알고 싶은데 이곳에는 상주하는 해설자도 없다.
수북정 답사는 권력 대신 자연을 택한 선비의 지조, 강물을 보며 다스리는 마음의 질서, 그리고 백제의 역사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여정이었다. 수북정은 여전히 백마강을 굽어보고, 낙화암을 바라보며, 흐르는 물과 변치 않는 바위 사이에서 나의 짧은 인생을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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