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농원

꽃비 내리는 전원에서

경산 耕山 2026. 4. 15. 11:54

꽃비 내리는 전원에서

꽃들이 숲을 이룬 비선농원의 복사꽃이 연분홍 숨을 몰아쉬며 절정에 달하더니, 속절없는 봄비에 몸을 누이며 작별을 고한다. 엊그제 산허리를 감돌던 연둣빛 기운에 가슴 설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어느덧 발치에는 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는 꽃비의 계절을 맞이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은 흐르는 강물만이 아님을, 낙화가 가득한 과수원의 고요 속에서 새삼 깨닫는다. 이 속절없는 짧음 앞에서 시선 이백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天地者 萬物之逆旅)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라. (光陰者 百代之過客)

라 읊었다.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대지는 잠시 쉬어가는 거처일 뿐이며, 유구한 시간 속의 인생이란 찰나를 스쳐 가는 나그네의 발길과 같다는 통찰이다. 복사꽃이 지는 풍경은 내게 덧없음의 미학을 가르친다. 그 덧없음은 허무로 귀결되는 절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유한함을 인정할 때, 내가 누리는 풍류는 비로소 깊어진다. 꽃이 영원히 피어 있다면 그 붉음을 찬미할 이유가 없듯이, 봄날이 하룻밤 꿈처럼 짧기에 나는 등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워서라도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려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백의 통찰은 지나가는 것들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비선농원의 복사꽃은 비록 비바람에 져버리지만, 그 꽃잎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열매의 약속이 맺히듯이 내 가슴에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문장이 남는다. 만물의 여관에 머무는 나그네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풍류는,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 찰나의 눈부심을 온 마음으로 껴안는 일일 것이다. 봄비가 그치고 나면 농원의 풍경은 또 다른 초록으로 채워지겠지. 짧아서 더 애틋한 이 봄밤, 이백의 문구를 술잔 삼아 기울이며 덧없는 봄날을 가장 찬란한 기억의 곳간에 갈무리해 본다.

엊그제 연분홍에
전원이 물들더니
하룻밤 궂은비에
꽃비 되어 흩날린다

나는 만물의 여관에 든 길손
잠시 등불 밝혀
꽃비 속을 거닐며
봄날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꽃비 내리는 봄 길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꽃처럼 웃어보면, 인생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록재 주변 수사해당화와 홍도화, 황매화
복사꽃 꽃그늘이 좋아서....
연분홍 꽃내음에 봄날이 간다
이화에 월백하면 좋은데 올해는 그믐달을 봐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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