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농원

어깨가 말해주는 풍경

경산 耕山 2026. 3. 30. 11:29

어깨가 말해주는 풍경

비선농원의 봄은 2월의 찬 바람 속에서 정적을 깬다, 아직 동면 중인 대지를 흔들어 깨우는 것은 오로지 농부의 발자국이다. 퇴직 후 밭농사 글농사를 병행하며 살아온 지도 어느덧 몇 해가 흘렀다. 친구가 붙여준 경산(耕山)’이라는 호처럼 산을 일구고 글을 심는 삶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지만, 이순(耳順)의 끝자락에서 몸은 통증으로 제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농원의 봄은 언제나 흙냄새로 시작된다. 단단한 흙을 파헤쳐 퇴비를 넣고, 앙상한 가지를 쳐내는 전지 작업은 온몸의 관절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일들이다. 전지 가위를 쥔 손의 힘은 팔꿈치를 타고 올라와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고, 팔은 하루 종일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그 무게를 지탱하는 허리는 활처럼 휘고, 겨우 몸을 세우려 하면 무릎이 저항한다. 가지치기를 마친 나무는 새 옷을 입은 듯 단정해지고, 그 사이로 바람은 꽃망울을 흔들며 계절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 노래를 듣는 내 어깨는 점점 무거워진다. 3월 하순이면 이 반복된 노동의 흔적은 멍처럼 깊게 배어든다.

내 어깨를 혹사하는 또하나의 일, 이 일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즐겨하는 풍류. 농원을 드나드는 벗들과 나누는 술 한 잔, 그 술맛을 내기 위한 양조 과정 또한 고행에 가까운 노동의 연속이다. 특히 쌀을 씻는 세미(洗米)’ 과정은 한 편의 정성스러운 의식이다. 차가운 물에 담긴 쌀알이 깨지지 않도록, 마치 아기의 살결을 만지듯 조심스레 손을 담근다. 쌀알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원을 그린다.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시 헹구고 또 씻는다고정된 자세로 앉아 40여 분. 쌀 알갱이들을 씻고 헹구기를 반복하는 동안, 내 어깨는 술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묵묵히 통증을 삼킨다. 물의 저항을 이겨내며 쌀을 돌리는 팔의 움직임은 어깨 관절을 갈아내지만, 쌀씻기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술맛은 깊어진다. 술은 인내로 얻어진다. 기다림과 정성이 스며들어야만 좋은 술맛이 나온다.

흙냄새와 술향기가 교차하는 일상은 내게 늦게 찾아온 즐거움이다. 그런데 나이가 그 즐거움에 제동을 건다. 근육은 줄어들고, 어깨는 통증을 호소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양도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병원에서는 어깨 통증을 오십견이라 이름 붙였다. 흔히 나이가 들면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 평화로운 풍경 뒤에 숨겨진 흙먼지와 땀방울, 마모되는 관절의 고통까지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머리로 그린 전원은 수채화에 가깝지만, 발로 딛는 농사는 유화처럼 두텁고 거칠다. 농사는 책으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현실이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관념 속의 자연이 아니라, 고된 노동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대지는 정직한 꽃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이 고된 농사와 양조를 이어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나이라는 브레이크에 걸려 삶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지만 비선농원에서 벗들과 나누는 풍류는 여전히 이어진다. 꽃그늘 아래서, 내 어깨의 비명과 바꾼 맑은 술 한 잔을 벗들과 나누는 그 풍류를 어찌 놓을 수 있겠는가어깨가 아픈 뜻은, 이제 욕심이 아닌 계절의 속도에 순응하라는 몸의 낮은 전언(傳言)일지도 모른다. 어깨가 전하는 신호는 조금 느리게 그러나 더 깊게 살아가라는 권유다. 꽃을 피워낸 과수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내 손의 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술맛은 기다림과 정성이 있었기에 깊어졌다. 노화는 서글픈 마모라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충분히 견뎌온 가장 정직한 훈장이다.
굽어가는 어깨 위로 꽃그늘이 내려앉는다. 그 무게는 더 이상 짐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계절들이 남긴 따뜻한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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