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농원

낮은 곳으로 흐르는 봄의 노래

경산 耕山 2026. 3. 21. 12:45

낮은 곳으로 흐르는 봄의 노래

입춘과 우수를 지나왔건만, 산그늘 깊은 비선농원의 아침은 여전히 서늘하다. 두툼한 겉옷을 여미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하루를 연다. 흙의 안부를 묻고 나무의 숨결을 듣는 이 시간, 발끝에 닿는 땅은 어제보다 한결 부드럽다. 계절은 눈보다 먼저 발바닥으로 전해진다
농원에는 살구와 복숭아가 저마다의 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늘 한곳에서 멈춘다. 가지를 낮게 늘어뜨린 능수매화 앞이다. 연분홍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그것은 마치 수줍은 여인의 고운 소매 끝이 조용히 흘러내리는 듯하다. 처져 있으되 꺾이지 않고, 부드럽되 흐트러지지 않는 곡선. 그 자태는 화려함보다 깊은 품위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위로 솟는 기상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 앞에서 다른 배움을 얻는다. 힘이란 높이 오르는 데 있지 않고, 제 무게를 감당하며 아래로 내려올 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낮게 몸을 숙일수록 향기는 멀리 번지고, 굽은 가지 끝에서 오히려 꽃은 더 환하게 터진다

안개가 엷게 내려앉은 아침이면 능수매화는 비로소 제 빛을 드러낸다. 희미한 기운 속에서 번지는 꽃빛은 또렷함보다 오래 남고, 가지마다 맺힌 꽃송이는 소란을 지운 채 고요를 깊게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서리의 냉기와 막 피어나는 생명의 온기가 한 가지에서 맞닿는다. 겨울을 건너온 시간들이 그 안에 잠잠히 스며 있다.
그 곁에 서면 은은한 향기가 안개처럼 번져 마음에 닿는다. 드러내지 않되 사라지지 않는 향기. 능수매화는 말없이 일러준다. 삶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드러내지 않아도, 낮은 곳으로 스며드는 온기 하나로 충분하다고.

나는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냈다. 입술 사이로 스며드는 첫 숨에 동요 고향의 봄의 느린 선율을 얹는다. 낮게, 더 낮게 흐르는 음 하나. 그 길고 가느다란 숨결 위로 능수매화의 연분홍 꽃빛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들이마신 숨에는 아직 겨울의 서늘함이 남아 있고, 내어보낸 숨 끝에서는 봄이 풀린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마다 보이지 않는 향기가 번져, 가지 끝에서 다시 아래로, 다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길게 끈 한 음이 안개 속으로 스며들 때, 꽃은 소리 없이 피어나고 향기는 말없이 멀어진다.
나는 더 이상 곡을 연주하지 않는다. 숨을 건넬 뿐이다. 능수매화의 가지가 대지를 어루만지듯, 내 호흡 또한 낮은 곳을 향해 닿는다. 그 순간, 자연과 나는 하나의 숨이 된다. 보이지 않는 선율이 꽃가지를 따라 조용히 흐른다.

올봄에도 나는 비선농원을 일구고 시를 심을 것이다. 굽이진 길을 돌아온 이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이 낮은 자리에서 조용한 향기를 지키며.......  능수매화처럼 낮게, 더 낮게. 대지를 향해 흐르는 꽃처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스며드는 삶을 살고 싶다
봄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부터 조용히 번져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안개 자욱한 비선농원 능수매화
대지를 향해 늘어뜨린 꽃가지들
능수매화 가지는 겸손의 아이콘 같다.
팔을 벌려 춤추는 무용수 같은 자태!
매화 꽃가지에 서리가 녹이 방울처럼 매달렸다.
'매화는 춥다고 해서 자기 향기를 팔지 않는다'
그윽한 향기(암향) 야단스럽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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