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가장 먼 여행

경산 耕山 2026. 3. 13. 12:10

가장 먼 여행, 거실기행
   - 차마고도에서 멈춘 길, 식탁 위에서 이어지다

세상의 모든 집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머물고 있다. 아침 식탁 위로 퍼져 나오는 된장찌개의 따스한 향기, 햇살 속에 보송하게 말라 피부에 닿는 수건의 포근함,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는 마루의 고요함. 이 평온한 풍경은 결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시간을 덜어내고, 무릎을 굽혀 정성을 쏟을 때 비로소 집 안에는 생활의 온기가 깃든다. 그 손길은 이름 없이 흘러가지만, 가족의 하루를 지탱하는 가장 깊은 힘이 된다.
아내는 오랫동안 그 일을 해왔다.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직장에서 묵묵히 걸어온 성실한 보행자였다. 결혼 초, 시외로 출퇴근하며 지쳐 돌아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설거지는 스포츠’라 이름 붙이고 가사 분담을 5:5로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숫자로 가정을 재단하려 했던 사내의 순진한 오만이었다. 가사란 단순히 양으로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과 끊임없는 마음의 기울임이 있어야만 집은 살아 숨 쉬고, 그 온기가 가족의 일상을 지탱한다.

아이들이 둥지를 떠난 뒤, 우리에게는 늦게 찾아온 신혼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퇴직 후 몇 해 동안 길 위에서 살았다. 아내는 지도를 펼쳐 길을 찾고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는 영어회화를 배우고 나는 여행을 기록했다. 서로의 역할이 꼭 맞아떨어지는 이중주였다. 그러나 인생의 기쁨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때때로 시샘을 했다. 차마고도의 트레킹 길에서 아내의 무릎 연골판이 찢어지며 발걸음이 멈췄다. 그 순간부터 여행은 끝났고, 나의 새로운 직업이 시작되었다. 전업주부, 그리고 간병인.
나는 오랫동안 아내의 가사를 돕는 조력자였지만, 이제는 주방의 주인이 되었다. 밥은 마음이 급하면 죽이 되었고, 물을 덜 넣으면 고두밥이 되었다. 생선은 겉은 숯처럼 타고 속은 아직 바다를 품고 있었으며, 된장찌개는 어떤 날은 군량처럼 짜고 또 어떤 날은 수행자의 공양처럼 싱거웠다. 집안일은 하루 세 번 반복되는 마라톤이었고, 설거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연장전이었다. 아침을 치우면 점심이 기다리고, 설거지를 끝내면 빨래가 기다렸다. 세탁기는 버튼이 많았지만, 빨래를 넣고 빼고 개는 일은 결국 사람의 손이 해야 했다. 주스를 만들려고 믹서기를 다루다가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다. 진공청소기를 분해하다 고장을 내자 아내는 나를 ‘똥손’이라 놀렸다. 전업주부는 요리뿐 아니라 기계와 씨름하는 IT 능력까지 요구했다.
간병은 더 큰 산이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아내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자동차로 옮기는 일은 작은 산을 넘는 것과 같았다. 단 한 칸의 계단도 휠체어에게는 벽이 되었고,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신호였다. 어느 날은 아내를 화장실로 옮기다 허리가 삐끗해 나까지 환자가 될 뻔했다.
끼니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병과 싸우는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이었다. 매번 식탁 앞에 앉기 전, 내 머릿속에는 늘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환자의 입맛은 예민한 저울 같아, 한 숟가락의 간과 온도까지도 몸의 반응을 좌우했다.
어느 날, 장보기가 귀찮아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대충 상을 차렸다. “점심은 이렇게 먹읍시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대신 아내의 얼굴에는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음식의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리던 사람이 이제는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 그 상실의 무게가 밥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후회했다. 잠시 아내에게 무성의했음을.  그날 이후 장보기는 나의 수행이 되었다. 시장의 소란 속에서 고등어의 눈을 살피고, 무의 단단함을 눌러 보고, 단골 상인과 농담을 나누며 나는 조금씩 주부가 되어 갔다. 그러는 사이 다행히 아내는 평지 산책이 가능해졌다. 간병 부담은 줄었지만 여전히 가사는 내 일상이다.
여행은 이제 모니터 속 풍경으로 와유(臥遊)가 되었지만, 나는 거실 한쪽에서 알프스 정상에서도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있다. 길은 밖으로만 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안으로도 흐른다. 거실 기행,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먼 여행이었다. 차마고도에서 멈춘 길은 식탁 위에서 다시 이어졌다.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는 배운다. 삶에서 가장 먼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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