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기다림의 심리학

경산 耕山 2026. 3. 9. 10:13

기다림의 심리학

나는 빵을 좋아한다.
갓 구워낸 빵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냄새는 바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작은 위로다. 그런데 이 소박한 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차를 타고 달려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성소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국의 식탁에서야 새삼 깨달았다. 이태리 여행에서 만난 일행이 내가 대전에 산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성심당 이야기를 꺼냈다. 빵 하나를 사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긴 줄에 선다는 이야기였다. 대전 시민인 나에게 그것은 늘 보아오던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서 그 빵집은 어느새 작은 순례지가 되어 있었다. 익숙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목적지가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고, 또 조금은 흥미로웠다.

얼마 전 장항의 솔숲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한 아구탕 집을 찾았다. 주변 식당들은 한산했지만 그 집 앞만 유난히 붐볐다. 평소의 나라면 그 소란을 피해 다른 식당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문득 줄을 서는 마음이 궁금해졌다. 나는 삼십 분이라는 시간을 지불하고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음식의 맛보다 기다림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두쫀쿠라는 쿠키가 유행이라고 한다. 손바닥만 한 쿠키 하나를 사기 위해 가게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선다고 한다. 그들에게 그 쿠키는 간식이라기보다 하나의 기념품에 가깝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그 유행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작은 증표를 남긴다. 인문학자 르네 지라르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고 싶어서 줄을 서는지도 모른다.

긴 줄은 그래서 조금 쓸쓸하다. 그 속에는 혼자 서 있기 싫은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보상이 언제나 달콤한 것은 아니다. 유명한 식당에서 기대보다 평범한 음식에 실망할 때도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시 줄을 선다. 아마도 기다림 자체가 음식에 보이지 않는 양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만큼 기다렸으니 틀림없이 맛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을 먹고 있으리라.
우리 사회에서 맛집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방송과 인터넷은 수많은 이름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그 이름을 따라 움직인다. 타인의 혀가 내린 판결에 나의 취향을 구속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맛집천국의 서글픈 진실이다. 그 사이에서 조용한 식당들은 종종 잊힌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런 식당에서 더 편안한 식사를 한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나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긴 줄의 끝에서 타인의 취향을 빌리는 시간보다, 이름 없는 식당 창가에서 나의 미각을 조용히 만나는 시간이 사람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어쩌면 진짜 맛집은  왁자지껄한 행렬 끝에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저녁
소중한 사람과 마주 앉아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에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그 식탁
나는 가끔 그 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난다.

대전 성심당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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