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사라진 나무의 그늘

경산 耕山 2026. 3. 11. 13:45

사라진 나무의 그늘

육십 년이라는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명절을 맞아 고향 학교를 찾았다. 내가 꿈을 키우던 국민학교는 이미 옛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낮은 언덕 위에 검은 나무판자로 둘러친 교사(校舍)가 길게 늘어서 있던 그 학교 대신, 밝은 색 벽돌로 단장한 아담한 건물이 햇살 속에 조용히 서 있었다.
옛 교실은 겨울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고, 여름이면 매미가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외벽 틈에는 박쥐들이 살고 있었고 운동장에는 늘 흙먼지가 일었다. 그 시절 학교는 늘 시끄러웠다. 아이들은 많았고 운동장은 언제나 좁았다. 종이 울리면 교실 문이 한꺼번에 열리며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자국 소리와 웃음소리, 싸우다 울던 소리까지 뒤섞여 학교는 하루 종일 살아 있는 생물처럼 숨 쉬었다.

그 북적임의 중심에 거대한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있었다
.
운동장 한켠에 서 있던 그 나무는 마치 학교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는 파수꾼 같았다. 굵은 줄기는 몇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만큼 컸고, 넓은 잎은 여름에는 거대한 우산처럼 운동장 위에 시원한 그늘을 펼쳤다가을운동회 날이면 전교생이 그 나무 아래 줄지어 앉았다. 행진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등을 밀고 장난을 치다가도 선생님의 휘슬 소리가 울리면 금세 줄을 맞추곤 했다. 급식으로 나누어 주던 옥수수빵차를 기다리며 허기를 달래던 자리도 바로 그곳이었다. 옥수수빵은 학생 수만큼 돌아오지 않아 배고픔은 더했지만, 친구와 나누어 먹던 그 빵은 이상하게도 맛있었다. 돌이켜보면 플라타너스의 그늘은 단순한 그늘이 아니었다수백 명 아이들의 배고픔과 웃음, 그리고 막 피어나던 꿈을 함께 품어 주던 커다란 품이었다.
그 시절 이 학교에는 천 명 가까운 학생이 다녔다. 등교 시간이면 골목과 개울 건너 동네별로 아이들이 줄지에 몰려왔다. 조회 시간이 되면 운동장은 검은 머리들로 가득 찼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늘 바람에 흩어졌고, 아이들의 속삭임이 운동장 위를 잔물결처럼 번져 갔다. 학교는 언제나 북적였고, 그 북적임이야말로 어린 시절의 공기였다.
그러나 지금 운동장은 놀랄 만큼 조용하다. 플라타너스가 서 있던 자리에는 새로 지은 체육관이 단정하게 들어서 있다. 운동장은 예전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데도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학생 수보다 교직원 수가 더 많다고 한다. 아이들의 발자국 대신 바람이 운동장을 지난다. 한때 천 명의 아이들이 뛰놀던 자리에는 적막이 내려앉아 있다. 웃음소리가 사라진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먼 옛날 선생님의 휘슬 소리가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나는 한참 동안 플라타너스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나무는 사라졌지만 그 그늘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그늘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우리 세대의 기억을 조용히 감싸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지식을 전하고 디지털 교과서가 칠판을 대신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일만은 여전히 사람의 몫일 것이다. 아직 아이의 마음을 읽는 기계는 없다. 요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가볍지 않다. 아이들은 줄어들고 학교는 점점 복잡해진다. 한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말이 있었지만, 그 말이 지녔던 온기는 이제 조금 낯설다. 교사는 더 이상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닌 듯하다. 행정도 맡아야 하고 설명도 해야 하며, 때로는 이해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 교실은 어느새 규정과 절차의 그늘 아래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퇴직을 앞둔 교장 후배에게 물었다.
이 시대에 행복한 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학교요.”
짧은 탄식이었지만 그말은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렸다. 교육 현장에서 버텨 온 세월의 무게가 그 한마디 속에 담겨 있었다.
나는 교육을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소박한 바람은 있다. 학교가 아이들을 어디론가 밀어 넣는 공장 같은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삶의 근육을 키워 가는 마당이면 좋겠다. 아이들의 숫자는 줄어들지라도 그 마당에서 자라는 꿈까지 줄어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은 곳, 각자의 속도로 자라나는 마당이면 좋겠다.
운동장을 나오며 뒤돌아보았다. 세월은 많이 변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플라타너스의 그늘이 남아 있다. 어쩌면 학교란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 위에 조용히 그늘을 드리워 주는 곳. 나는 잠시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교문을 나섰다.

에세이 내용에 따라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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