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소감
- 사라지는 풍경이 건네는 질문
청남대로 향하는 산책길, 허기를 달래려 들른 문의(文義) 마을은 마침 오일장이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말은 본래 뜻밖의 횡재를 의미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장터의 초상은 기대와 달리 적막했다. 예전 같으면 인파의 파도에 몸을 맡겼을 장터가 이제는 버스정류장 옆 좁은 골목으로 밀려나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계절의 전령사처럼 흙 묻은 농산물을 무릎 앞에 부려놓은 할머니들, 먼 바다의 비린내를 싣고 온 외지 상인의 좌판들….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의 무심한 눈빛은 활기를 잃은 풍경화처럼 쓸쓸했다. 오래된 책의 책장을 넘기다 발견한 빛바랜 삽화 한 점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신탄장, 유성장, 문의장, 옥천장, 청산장, 영동장…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장들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더 많은 소리를 듣는다. 억센 손마디로 삶의 파고를 넘었을 할머니들의 투박한 사투리, 서로 얼굴을 아는 단골들의 웃음소리, 대를 이어 운영하는 떡집의 고소한 향기, 엿장수의 구수한 외침과 가위질 소리, 천지를 흔들던 뻥튀기 기계의 요란한 폭발음, 찐빵솥에서 새어나오는 뜨거운 수증기와 돼지 냄새 나는 푸짐한 순대국, 대장간 불꽃이 튀던 장터의 열기. 그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때문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장터 순례를 한다.
모처럼 시장에 가 보면
시끌벅적한 소리와 비릿비릿한 내음새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별로 살 물건 없는 날도
그 소리와 냄새 좋아 시장길 기웃댄다 / 나태주의 ‘시장길’에서
다양한 장터의 소리는 소음 이상이었다. 대장간 불꽃처럼 뜨거웠던 삶의 열기였고,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낸 삶의 교향악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장터는 거대한 유통의 흐름에 밀려난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대형마트의 화려한 조명과 온라인 쇼핑의 매끄러운 편리함은 장터의 투박한 매력을 소리 없이 지웠다. 정겨운 장터가 줄어드는 것은 경제의 쇠퇴를 넘어, 내 마음속 소중한 기억의 한 페이지가 물리적으로 찢겨 나가는 듯한 아픔이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장터의 맥박을 더욱 느리게 만든다. 젊음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세월의 무게로 굳은 노인들의 손마디뿐이다. 장터는 뿌리를 지키려 애쓰는 늙은 나무를 닮았다. 가지마다 활력이라는 잎은 떨어져 나가고, 오직 ‘생존’이라는 마른 뼈대만 남긴 채 잊혀가는 운명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다. 과거의 오일장은 물질이 교환되는 경제적 장소이기 이전에, 안부를 묻고 온기를 나누던 공동체의 거대한 서사시였다. 흥정의 말 속에 배려가 섞이고, 덤 한 줌에 정이 오가던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으로 연결되었다.
허전한 사람들은 다들 모였다
잃은 것이 많은 사람들
잃은 것을 찾으려고 허둥들 댄다
바다를 잃은 사람은 청어, 조기, 삼치를 사 들고 가고
고향을 잃은 사람은 산나물을 한 바구니 담아 간다 / 윤수천의 ‘시장’에서
장터를 한 바퀴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많지 않았고 바람만 골목을 지나갔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장터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나누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뻥튀기 기계의 폭발음이 울리고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남아 있다. 장터는 사라져가는 뒷모습으로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이 시대에, 우리 삶의 진정한 풍요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장터는 공동체의 무대에서 '기억의 무대'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언젠가 인생의 길을 걷다 문득 추운 바람을 만나는 날이 온다면 장터의 기억들이 작은 불씨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 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장터를 찾는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 있던 시간의 온도를 잠시나마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