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프라도 미술관 기행2

경산 耕山 2026. 1. 2. 00:32

프라도 미술관 기행

음악영화 <아마데우스>를 감독했던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고야의 유령은 화가 고야의 운명을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고야는 궁정화가가 아니라, 역사의 파파라치처럼 시대의 진실을 몰래 찍어낸 예술가였음을 보여준다. 종교재판과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그는 권력과 종교, 욕망과 폭력이 뒤엉킨 현실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여주인공 이네스의 비극은 개인의 삶이 어떻게 거대한 역사적 폭력에 휘말리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영화 속 메시지처럼,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은 그의 붓끝 전체를 관통한다.
프라도 미술관 입구에서 마주한 고야의 동상은 마치 역사 여행의 가이드처럼 서 있었다. 대리석 받침대 위의 그의 모습은 곧 인간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무언의 예고였다. 동상 주변의 부조들은 고야의 작품 세계를 압축한 예고편 영상처럼, 관람객에게 앞으로 펼쳐질 장면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선
프란시스코 고야의 방에 나란히 걸린 옷입은 마야옷벗은 마야는 패션쇼의 전후 사진처럼 보였다. 고야의 옷벗은 마야옷입은 마야는 동일한 자세와 구도를 공유하지만 표현 방식과 의미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옷벗은 마야는 부드러운 붓질로 피부의 질감과 곡선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어두운 배경 속에서 인물의 육체가 화면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한다. 반면 옷입은 마야는 화려한 의상과 직물의 주름, 색채를 세밀하게 표현하여 사회적 지위와 규범을 강조하고, 인물의 존재감을 육체적 사실성보다는 사회적 상징성에 기울게 한다.
옷을 입은 마야는 사회적 규범 속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었고, 옷을 벗은 마야는 욕망과 자유의 상징처럼 대담하게 누워 있었다. 그러나 두 눈빛은 똑같았다. 관람자를 꿰뚫어보는 그 시선은, 옷을 입든 벗든 결국 인간은 타인의 무대 위 배우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프란시스코 고야 <옷벗은 마야> 1800년 97×190cm 프라도미술관
프란시스코 고야 <옷입은 마야> 1807년 94.7×188cm 프라도미술관

고야는 신화 속 비너스가 아닌 현실의 여성을 정면으로 그려냈다. 이는 당시 스페인 궁정과 교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파격이었다. 옷벗은 마야는 스페인 총리의 개인 주문으로 제작되어 은밀히 소장되다가 왕실 재산 압류 과정에서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현실 여성의 누드를 정면으로 그린 것은 종교적·도덕적 규범에 어긋나는 파격으로 간주되어 종교재판소의 심문 대상이 되었으며, 고야는 소환되어 해명을 했지만 직접적인 형벌은 받지 않았다. 다만 작품은 1814년부터 1836년까지 종교재판소에 의해 가압류 되었고 이후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이 사건은 고야의 궁정화가로서의 지위를 위태롭게 했으며, 그의 예술이 궁정 장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위선을 폭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0853, 역사적 절규
역사화·전쟁 회화 전시실로 들어서면, 고야의 걸작 180853이 기다린다.

고야 <1801년 5월 3일> 1814년 268×347cm 프라도미술관

180853은 스페인 독립전쟁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180852, 나폴레옹의 프랑스 점령군에 맞서 마드리드 시민들이 돌과 칼, 즉흥적인 무기로 봉기했지만, 훈련된 군대 앞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은 다음 날인 53일 새벽부터 마드리드와 주변 지역에서 수백 명의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해 총살했다. 고야는 이 학살 장면을 직접 목격했거나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웅적 서사 대신 공포와 절망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프랑스 군대는 얼굴 없는 기계처럼 묘사되어 냉혹한 권력을 상징하고, 스페인 저항군은 생생한 표정으로 인간적 고통을 드러낸다. 중앙의 등불은 신성한 빛이 아니라 처형을 위한 인공의 빛이다. 흰 셔츠의 남성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연상시키며, 이름 없는 민중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끌어올린다. 이 작품은 전쟁을 영웅담이 아닌 비참한 학살의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다. 고야의 붓은 이후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의 <게르니카>로 이어지는 현대 역사화의 길을 열었다.

프라도 미술관의 여정은 단순한 그림 감상이 아니라, 인간과 권력, 욕망과 자유를 탐구하는 철학적 여행이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묻고, 고야의 마야는 욕망과 규범의 긴장을 드러내며, 180853은 역사적 폭력과 자유의 증언으로 나아간다.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여행한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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