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자락에서
- 걷는다는 기적을 잃고
차마고도 일정은 이틀을 남겨두고 있었다.
해발 3,200m 샹그릴라의 숨 가쁜 공기를 뒤로한 채,
기차는 다섯 시간 동안 천천히 고도를 낮추어
쿤밍의 소란한 평지로 우리를 내려주었다.
샹그릴라의 고도는 아직 폐 속 어딘가에서 낮게 울리고 있었다.
아내는 아픈 두 다리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간헐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 긴 여정 동안, 내 무릎 위의 두 다리는 작은 새처럼 떨렸다.
한때는 능선을 넘나들며 세상을 향해 힘차게 뻗던 발걸음이었는데,
이제는 작은 진동에도 주저앉을 듯 흔들렸다.
그 다리를 감싸 안은 채 달리는 내내,
고통은 아내보다 오히려 내 쪽에서 더 깊게 번졌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도 덜어줄 수도 없는
인간의 오래된 한계를 묵묵히 견뎠다.

쿤밍역은 소음과 인파가 뒤엉킨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인파는 물결처럼 요동치고 소음은 천둥처럼 휘몰아쳤다.
그 인파를 빠져나오는데, 아내의 걸음은 절뚝임을 넘어
왼쪽 다리를 거의 끌어야 할 지경이었다.
휠체어 도움을 구할까 했지만 낯선 땅의 혼란 앞에서
나는 말문조차 열지 못했다.
고립된 섬처럼 서로에게만 의지해 움직였다.
등산 스틱은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했고,
나는 아내를 껴안듯 부축하며 그녀의 무게를 온몸으로 떠받쳤다.
왼 무릎은 체중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떨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건너는 용기였다.
간신히 호텔에 도착하여 객실문이 닫히는 소리는
하루의 끝이 아니라 삶의 한 페이지가 접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걱정한 것은 더 이상 내일의 여정이 아니라
아내의 삶 그 자체였다. 아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
여행을 그토록 사랑하고, 트레킹과 하이킹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던 사람이
‘집’을 가장 간절히 원한다는 그 사실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그 말은 여행을 사랑하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선언 같았다.
그 순간, 수많은 길들이 되감기처럼 떠올랐다.
토스카나의 햇살, 돌로미테의 바위길, 백담계곡의 물빛….
그 모든 길은 아내의 발걸음으로 완성된 하나의 대륙이었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큰 기적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江南의 길을 다 걸어도 먼 줄 몰랐던 것은
함께 걷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여행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었다.
걸음을 통해 자기 안의 세계를 확장하고,
세상의 가장자리와 손을 맞잡는 일이었다.
그 자유가 고통 앞에서 흔들린다면,
아내의 삶은 얼마나 좁아질까.
나는 그 질문을 밤새도록 가슴에 얹은 채
쉽게 대답을 찾지 못했다.
걷는다는 것은 아침이 스스로 밝아오듯
당연히 이어질 것 같은 일이다.
그것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몽테뉴는 “길 위에 서야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아내의 발걸음은 늘 세계의 가장자리를 확장하는 붓질이었다.
토스카나의 돌길은 그녀의 웃음으로 물들었고,
돌로미테의 바람은 그녀의 호흡으로 새겨졌다.
설악산의 물소리는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리듬을 만들었다.
그 모든 길은 결국 하나의 대륙이 되어
우리 삶의 행복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지금, 그 대륙의 한 귀퉁이가
아내의 왼 무릎에서부터 침식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침식을 막아낼 수 없었다.
다만 그 곁에서, 무너져가는 땅을 붙들 듯
아내의 무게를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아내의 무릎에 깃든 이 아픔이
삶의 전부가 아니기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여행의 한 장면이 아니라
아내라는 세계를 지탱하던 두 발의 자유였다.
아내의 기동력,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지탱하던 행복의 조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아직 다 쓰지 않은 여백의 시간,
채 완성되지 않은 대륙의 조각퍼즐이 남아 있다.
이 밤, 쿤밍의 빛은 너울처럼 창문에 흔들리고
우리의 어둠은 조용히 깊어지지만, 나는 믿는다.
언젠가 아내가 다시 내 옆에서 천천히 걸어줄 날을.
함께 걸을 수 있어 길이 다시 아름다워지는 날을.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오늘 밤처럼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두 발 아래 조심스레 새로운 육지가 솟아오를 그 순간을,
서로의 손을 붙든 채 아주 느리게, 아주 오래,
다시 하나의 대륙처럼 걸어갈 그 날을.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론다의 투우장에서 (1) | 2025.12.28 |
|---|---|
| 라만차 풍차마을에서 (0) | 2025.12.27 |
| 차마고도, 행복을 걷다 (5) | 2025.11.28 |
| 차마고도 (6) | 2025.11.27 |
| 설산의 무대, 여강의 노래 (7) | 2025.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