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이중섭
- 그림 속에 남겨진 사랑, 그림 밖에서 흘린 눈물
늦가을의 정취가 절정에 이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붉게 물든 단풍은 가을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며, 가벼운 바람결에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속삭인다. 이미 만차인 주차장을 간신히 빠져나와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낙엽 앞에 섰다. 자연의 소멸과 예술의 영속성 사이에서, 삶의 유한성과 인간의 창조성에 대해 마주하게 된다. 이 늦가을의 나들이는 낙엽처럼 사라지는 순간들 속에서도, 예술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며 내게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 안은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찼다. 예술은 더 이상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세계를 사로잡은 K-음악처럼, 한국 미술 역시 그 저변을 넓혀가며 머지않아 세계 미술문화의 중심에 우뚝 설 날이 멀지 않아 보였다.
2층과 3층으로 이어지는 ‘한국근현대미술I’ 상설전에서는 특히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이라는 세 거장의 작품들이 인상에 남았다.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환기의 화면은 추상으로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며, 명상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박수근은 <할아버지와 손자>를 통해 서민의 삶과 가족애를 따뜻하게 그려내며,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마지막 9전시실, 이중섭관에 들어서면 마치 한 사람의 내면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흰소>, <황소>, <부부>—그의 대표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강렬한 선과 거친 질감, 그리고 절절한 감정이 화면을 뚫고 나와 관람자의 가슴을 울린다. 이중섭은 그림으로 말했고, 그림으로 울었으며, 그림으로 사랑했다.
이중섭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그의 삶을 알고 보면 가슴 아프다. 그가 남긴 선 하나, 점 하나에는 사랑과 그리움, 절망과 희망이 뒤엉켜 있다. 그림 속에 남겨진 사랑은 영원하지만, 그림 밖에서 흘린 눈물은 시대의 고통을 말해준다. 편지 속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가족을 생각한다. 그림은 내 마음의 편지다.”— 이중섭의 편지 중에서
그림은 그에게 삶의 유일한 표현 수단이었고, 동시에 가족을 향한 다리였다. 그 그림 앞에서, 예술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이중섭의 그림에는 늘 가족이 있다.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아도, 그의 붓끝에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스며 있다. <흰소>는 그 자신이자,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가장의 모습이다. 고요하지만 단단한 눈빛의 흰소는, 세상의 고통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가장의 결의처럼 보인다. 전쟁과 피난 속에서도 아이들을 품고, 아내를 기다리며 꿋꿋이 버티는 존재. 흰소는 이중섭이 가족을 향해 품은 책임감과 인내의 상징이다.
<황소>는 그 고통이 터져 나온 순간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현실, 편지 한 장으로 마음을 전해야 하는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이 분노로 변해 화면을 휘젓는다. 황소는 울부짖는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한 자책,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절망이 붓질로 폭발한다. 그 몸부림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다시 닿고 싶은 절박한 몸짓이다.
그리고 <부부>. 이 그림은 이중섭이 기억 속에서 꺼낸 가장 따뜻한 순간이다. 아내 마사코와 함께했던 짧은 시간이지만, 그 포옹은 모든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안식처였다. 그는 편지 속에 그림을 그려 넣고, 담뱃갑 뒷면에도 사랑을 새겼다. 그림은 그의 언어였고, 사랑의 통로였다. <부부>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함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키려는 애틋한 사랑의 기록이다.
이중섭의 그림은 가족을 향한 이야기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기록이며, 그리움과 책임, 분노와 애정이 뒤섞인 삶의 흔적이다. 그의 붓은 가족을 향한 편지였고, 그림은 그가 남긴 사랑의 언어였다.



한국 근대미술의 정점에 서 있는 이중섭과 박수근. 두 화가는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과 전후의 극심한 가난을 온몸으로 겪어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난국을 헤쳐 나간 방식은 그들의 예술 세계만큼이나 대조적이었다. 이중섭이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 정신적 가장의 역할에 몰입했다면, 박수근은 현실적 가장의 책임을 묵묵히 수행하며 서민의 삶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중섭에게 6.25 전쟁은 가족과의 생이별을 의미했다. 북에서 월남한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홀로 지내며 ‘가족’이라는 이상향을 그림 속에 투영했다. 현실의 가장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던 무능력한 그는, 오직 그리움이라는 격정적인 감정으로 가족을 지키려 했다. 그의 그림 <부부>가 암수 한 쌍의 닭을 통해 원초적인 사랑과 결합을 갈망하듯이, 그는 담뱃갑 은박지 위에 아이들과 아내를 끊임없이 그려냄으로써 현실의 결핍을 꿈속의 이미지로 채웠다. 이중섭에게 가장의 역할은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순수를 지키려는 예술혼 그 자체였다. 그의 황소 그림이 절규하듯 힘차고 역동적인 것은,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 무기력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향해 쏟아내는 뜨거운 내면의 에너지가 가장이라는 고독한 존재에게서 폭발한 결과였다.
반면 박수근에게 전쟁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동의 시작이었다. 그는 1.4 후퇴 후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고, 군산 부두에서 짐을 나르는 노동으로, 서울로 올라와서는 미군 부대 PX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그림이 잿빛 돌덩이처럼 거칠고 두터운 질감(마티에르)을 갖게 된 것은, 이처럼 고단한 생활 속에서 얻은 끈질긴 생명력의 반영이다.


박수근의 부부는 아내가 고생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절구질하는 여인> <시장 사람들>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이고 지고, 혹은 웅크리고 절구질을 하는 등 묵묵히 노동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가장으로서의 박수근이 아내와 함께 가난을 공유하며 현실을 버텨내는 동반자적 삶을 가장 ‘선하고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이상이나 격렬한 감정 대신, 일상의 소박함 속에서 묵묵히 책임을 수행하는 가장의 시선으로 시대를 기록했다.
결국, 이중섭의 가장은 가족과의 이별 속에서 사랑을 외치며 고독하게 불타오른 ‘감정의 투사체’였고, 박수근의 가장은 가장 낮은 곳에서 노동과 인내로 가족의 곁을 지킨 ‘현실의 흙벽’이었다. 이중섭의 사랑은 '삶을 태우는 불꽃'이었다면, 박수근의 사랑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바위'였다. 시대의 고난은 두 화가에게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르게 지웠지만, 이들이 그림 속에 남긴 뜨거운 가족애와 진실한 삶의 태도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관통하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