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붓끝에 피는 연꽃

경산 耕山 2025. 10. 31. 15:38

붓끝에 피는 연꽃  
  -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해남의 붓은
태양처럼 타올랐고

예산의 붓은
달빛처럼 스며들었다

칼 같은 붓끝
제주 바람에 젖어
연꽃이 되었다

해남 대흥사 <무량수각>1840년(위),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1846년(아래)

현판에 담긴 추사의 두 얼굴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단순한 서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삶의 궤적이며, 정신의 흔적이다. 해남 대흥사와 예산 화암사에 걸린 두 개의 무량수각현판은 그가 남긴 가장 극적인 대비이자, 한 인간의 변화가 어떻게 글씨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1840, 기해옥사(정적 김흥근의 상소로 탄핵당함)로 제주 유배길에 오른 추사는 해남 대흥사에 들러 <무량수각 (无量壽閣)> 현판을 남긴다. 당시 그는 형조참판까지 지낸 권세가였고, 자신의 글씨에 대한 자부심은 오만에 가까웠다. 대흥사에 걸려 있던 원교 이광사의 현판을 조선의 글씨를 망친 해괴한 글씨라며 떼어내고, 자신의 글씨로 바꾸자고 요구한 일화는 그 자존심을 잘 보여준다. 이때의 글씨는 기름지고 굵은 예서체로, 획마다 힘이 넘치고 장식적이다. 젊은 추사의 기세와 권위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주에서의 9년 유배는 그를 바꾸었다. 고립과 침묵,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그는 오만을 벗고, 비움의 미학을 깨달았다. 고향 예산의 화암사에 남긴 <무량수각(无量壽閣)> 현판 글씨는 제주도 유배 시절인 1846년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해는 추사의 회갑이 되는 해였으며, 화암사 중창을 기념하여 제주 유배지에서 이 글씨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기름기를 걷어낸 담백한 추사체, 절제된 획과 넉넉한 여백 속에는 노년의 통찰과 무심함이 배어 있다. 이 현판은 추사가 제주에서 다시 태어난 모습이다.

글씨가 곧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두 무량수각은 추사의 두 얼굴이다. 하나는 태양처럼 타올랐고, 다른 하나는 달빛처럼 스며들었다. 그가 남긴 글씨는 결국, 그가 살아낸 삶이었다. 젊은 날의 추사는 글씨로 권위를 세우려 했고, 늙은 추사는 글씨로 자신을 비웠다. 결국 <무량수각>의 두 글씨는 이렇게 말한다글씨는 곧 사람이며, 사람은 고통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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