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기행
열 시에 예약된 창덕궁 후원 관람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오전에 창덕궁 후원, 오후엔 종묘 답사를 위한 시간 확보가 그 이유였다. 창덕궁은 몇 차례나 찾았지만 종묘는 늘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생각없이 지나쳤다.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이 덜했던 탓이다. 부끄럽게도, 우리 전통문화 답사의 일번지로 꼽아야 할 종묘를 나는 이제서야 찾았다.
종묘에 대해서는 유홍준 교수의 문장을 읽고, 유현준 건축가의 유튜브 방송을 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종묘는 조선의 파르테논’이라고 극찬했다는데, 나에게 종묘는 이 때까지 막연하고 고루한 공간이었다. 관심조차 없었으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보일 리도 만무했던 것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보이고, 관심을 가져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종묘가 올해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지난 달에 5년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왕과 왕비의 신주 환안식이 있었다는 보도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종묘의 문을 넘어서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낯선 침묵을 만났다.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절제된 건축, 고요한 길, 그 사이를 흐르는 바람이 반겨주는 듯했다. 왕릉이 돌아가신 왕과 왕비의 육신을 모신 '무덤'이라면, 종묘는 오롯이 그분들의 영혼, 즉 신위를 모신 '신전(神殿)'이라는 기본적인 사실 정도만 흐릿하게 알고 있었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영혼이 머무는 이곳은 어떤 장식도 없고 가장 담백한 형태로 내눈에 들어왔다. 박석이 깔린 드넓은 월대 위에 낮게 올린 지붕, 긴 행렬로 이어지는 일자형 정전(正殿), 음양오행에 따라 배치된 열주들이 답사자를 경건하게 이끌었다.
얼마 전 일본의 신사(神社)를 찾은 적이 있다. 도리이(鳥居)라 불리는 정문을 지나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책로 같았고, 신전에는 별다른 위엄보다는 그 소박함 속에 사람들의 깊은 신앙이 깃들어 있었다. 일본의 신사들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종묘는 자연을 배경으로 삼되, 인간의 질서와 예를 중시하는 공간이었다.
반면에 이집트 신전은 달랐다. 고요한 숲도 없고, 예를 갖추는 제례의식도 없었다. 그 거대한 돌기둥들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지금은 신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파라오의 영광이자, 인간이 세운 가장 웅장한 질문이었다. “인간은 신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
일본의 신사는 편안하다. 사람 냄새 나는 신성함이 있었다. 이집트 신전은 장엄하다.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했다. 그러나 종묘는 고요하다. 고요해서 마음까지 정숙해진다.
‘위대한 침묵’의 공간
세상의 수많은 신전들 중에서 오직 조선의 마음을 담고 있는 종묘.
조선의 종묘는 말이 없다. 어떠한 과시도 없이 그저 긴 침묵으로 존재한다. 높은 기단도 아니고, 우뚝 솟은 첨탑도 없다.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에게 예(禮) 를 다하던 그 겸허함으로 가득하다. 그 침묵 안에는 수백 년 간 이어진 예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종묘는 ‘비움’을 통해 ‘채움’을 말하는 공간이었다. 영녕전을 나오다 다시 정전 앞에 섰다. 나직한 목조 건물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슴을 찌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를 모르는 사회는 근본이 없다.’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도 없다.’
문화란, 남겨진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이다.
종묘의 공간은 위엄을 드러내기보다는 겸손한 삶의 태도를 담았다. 그 속에 흐르는 것은 격조 높은 예(禮)의 정신이다. 예는 형식이 아니라 삶을 향한 태도다. 하늘 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사는 인간의 도리를 말없이 일러주는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묘는 ‘가르침’을 전하는 건축이었다. 침묵으로 말하고 여백으로 가르치는 건축의 성전. 그것이 바로 종묘였다. 종묘는 제례의식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정신의 공간이다. 종묘는 내게 바로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종묘를 나서며, 오늘 종묘를 찾은 외국인들을 보고 나도 저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외국여행 전에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우리 문화의 정수인 종묘에는 이토록 무심했다니..... 이는 나의 허약한 문화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리라. 이번 종묘 답사는 무엇보다 그런 나 자신의 무관심과 편견을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답사를 이어가며 ‘내가 사랑하는 문화재’ 하나쯤은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 가치를 주변에 알릴 수 있는 소양을 기르고 싶다.

월대는 유교적 전통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종묘의 월대는 조상의 혼을 기리는 신성한 공간으로서, 그 위에 서 이루어지는 제례는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예술적 표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종묘 정전은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제례 공간으로, 199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종묘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전통 건축의 상징으로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최근 종묘 정전은 노후화로 인한 목재와 기와, 월대 일부의 파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부터 5년간 대대적인 보수 및 수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영녕전에는 왕의 신주 16위와 왕후의 신주 18위로 총 34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는 정전에 모실 수 없는 분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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