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물레방아공원에서
노론의 명문가 출신 연암
과거시험을 거부한 천재
그가 입어야할
조선의 관복은 너무 작고 낡았다
늘그막에 뜻한 바 있어
안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고을 깊숙이 발 디디며
공문서보다는
흙냄새를 읽으려 했고
조정의 말보다
장터의 눈빛에 귀 기울였지
들녘에서는 北學으로 배운
물레방아를 돌려보고
아전 횡령과 송사에는
일대 연암 바람이 불었었지
안의장터 光風樓 마당에
역대 수령 송덕비 즐비한데
연암 송덕비만 없구나
연암 박지원은 1791년(정조 15년) 54세의 나이로 안의 현감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약 4년 2개월 동안 안의에서 재직하며, 지역의 농업 및 민생 개선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청나라 방문 후
연암은 1780년(정조 4년) 청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여행 중에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열하일기』를 통해 이 경험을 기록하였고, 이 시기가 그의 문학적 업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의현에서의 업적
안의현에서는 농기구 제작 및 보급, 농업 관련 저술을 남겼습니다. 특히 물레방아 설치를 통해 지역 농업의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그는 흉년 시에는 개인의 녹봉을 사용하여 백성을 구휼하는 등 목민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 부패 및 행정
연암은 안의 현감으로 부임하기 직전 아내와 사별하였으며 이후 재혼하지 않고 홀로 지냈습니다. 안의 현감 시절은 그가 실학적 이념을 실제 행정에 적용하였으며, 아전들의 횡령을 근절하고, 송사를 엄격히 처리하여 지역 사회의 부패를 척결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고을 백성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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