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명화 감상] 다산의 ‘매화쌍조도’

우록재 주인 2025. 2. 11. 19:09

茶山의 梅花雙鳥圖

 

강진골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꿋꿋이 꽃망울 틔우고
봄새 한 쌍 날아와 쉬어간다

펄펄 나는 저 새가
내 뜰 매화에 쉬네
꽃향기 그리워
기꺼이 찾아왔지

머물러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렴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 또한 많겠구나

아내가 보내준 치마폭에
아버지 마음 그림에 담아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주니
더욱 소중한 선물이 되리

비단에 채색, 44.7 x 18.5 cm, 고려대 박물관

題畵詩

翩翩飛鳥    사뿐 사뿐 새가 날아와
息我庭梅    우리 뜨락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쉬네
有烈其芳     매화꽃 향내 짙게 풍기자 
惠然其來    꽃향기 그리워 날아왔네
爰止爰棲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
樂爾家室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華之旣榮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
有蕡其實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

봄 그림 중에서 매조도(梅鳥圖)라면 다산의 하피첩(霞帔帖)을 빼놓을 수 없다.
유배 중이던 다산이 아내가 보내준 빛바랜 치마를 잘라 자식들에게 만들어 준 시화첩이다. 하피(霞帔)는 '노을 빛깔의 붉은 색 치마'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인들의 예복이었다. 아내의 치마를 4폭으로 잘라 두 폭에는 두 아들에게 줄 인생 교훈을 적었다. 남은 두 폭에는 두 딸들을 위해 매조도를 그렸는데, 결혼한 큰 딸에게는 ‘매화쌍조도’를 그려 선물로 주었고, 유배 중 소실이 낳은 늦둥이 딸을 위해서는 ‘매화독조도’를 그렸다.

다산에게 유배 중 낳은 딸이 있다는 얘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산 같은 존경받는 올곧은 선비가 유배 중에 첩을 두고 딸까지 낳았느냐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당시 양반가는 첩실을 두는 것이 관행이어서 지금의 잣대로 가위질할 수는 없다. 다산은 18년간 귀양살이 하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반신불수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그런 그가 기적처럼 일어나 수백 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하고 긴 유배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소실의 헌신적인 뒷받침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