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다산 답사기행] 사의재에서

우록재 주인 2025. 4. 14. 11:34

사의재(四宜齋)에서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맑은 물가에 거울을 들 듯
마음을 닦고
멀리 있지만
마음은 함께 하는
자식들 잊지 못해 붓을 들었다

'책을 베고 붓을 들어
경전을 품에 안는 삶
그것이 진정한 부귀라'

'세상은 험하고 사람은 얕으나
학문은 깊고 길이 있으니
마땅히 가야할 길은 독서다'

유배지 바람 속에 흐르는 글씨
편지 속에 담긴 아비의 꿈
흙냄새 가득한 강진땅에
배움의 씨앗 심었다

유배 초기 다산이 머물렀던 주막집을 다산은 '사의재'라고 했다.


사의재
(四宜齋)

위치와 환경
사의재는 강진군 강진읍에 위치해 있으며, 당시에는 작은 주막집이었습니다. 다산은 처음 이곳에서 주막 주인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그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주막 할머니가 던진 조언이 그를 깨우쳤고, 이후 그는 아카데미를 열며 제자들을 육성하게 됩니다.

이름의 뜻: 사의(四宜)
사의(四宜)’란 말은 네 가지 마땅한 것이란 뜻으로, 다산이 이곳에 머물며 자신의 삶의 자세를 다짐한 표현입니다
1. 거처는 마땅히 조용해야 하고
1. 마음은 마땅히 맑아야 하며
1. 말은 마땅히 삼가야 하고
1. 일은 마땅히 근면해야 한다
이 네 가지를 기준 삼아 유배지에서의 생활 태도를 정립하고, 학문과 수양에 몰두했습니다.

사의재의 의미 
다산은 사의재에서 유배 초기의 충격과 혼란을 정리하고, 자기 성찰과 학문적 재정비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곳은 후에 다산학의 뿌리를 이루는 철학, 정치, 교육에 대한 깊은 사유가 싹튼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머물게 되는 다산초당과 더불어, 그의 유배 학문 생활의 중심이 된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