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분실소동
신년 첫 트레킹을 경주 남산으로 정했다. 신라의 야외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신라의 얼이 골골이 스며 있는 답사지를 마음에만 두고 남산 주변만을 맴돌다가 오늘에야 실행하게 되었다. 삼릉을 출발하여 상선암 금오봉을 넘어 용장사지로 넘어가는 코스를 걷기로 했다.
삼릉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솔숲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트위스트를 추는 듯한 삼릉의 소나무들 아침햇살에 반갑다. 경주에 발걸음하면 나는 삼릉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내게 배움터이자 쉼터가 된 이후로 삼릉은 가장 편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에게 삼릉은 신라의 선물이었다. 천년의 역사가 내게 준 선물, 누가 뭐래도 삼릉은 내마음 속의 정원으로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가 주는 선물 하나쯤 가슴에 품고 있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따뜻해진다.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국보를 소유했다는 부유함도 비할 데 없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키 큰 솔숲을 지나 머리 없는 부처님을 뵙고, 선각육존불을 지날 무렵, 주머니에 손을 넣게 되었다. 왼주머니 속이 왠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오른주머니에는 핸드폰이 잡히는데 왼주머니에서는 납작한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지갑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평소에 오른주머니에는 핸드폰, 왼주머니에는 지갑을 넣고 다니는 습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어 겉주머니 속주머니, 바지주머니 등 여기저기 두드려 보고 뒤져도 보았다. 배낭의 뒷주머니, 옆주머니 윗주머니, 안팎의 주머니까지 더듬어 보았지만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호텔 체크아웃하면서 분명히 신용카드를 지갑에 끼운 다음 주머니에 넣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지갑은 어디로 갔는지 그 행방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런저런 추적 끝에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내리면서 떨어뜨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점점 확신으로 굳어졌다. 지갑은 차 주변이나 아니면 차 안의 시트 어느 사이에 껴 있을 것만 같았다. 전에도 한 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 돌로미티 어느 산장에서 휴대폰 분실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숙소 베개 밑에 있는 줄도 모른 채, 일행들의 불편을 사고 죄없는 외국인들만 의심하지 않았던가.
지갑을 잃어버린 불편한 마음으로 산을 오를 수는 없었다. 힘들게 올라왔던 산길을 다시 내려가자니 죽을 맛이었다. 겨울 아침, 아내와 나 사이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매의 눈을 가진 아내 앞에서 나는 꼼짝없이 잔소리유발자가 된 것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등짝에 고개 숙인 내 뒤통수에 아내의 시선이 따갑다. 내려가는 도중에 띄엄띄엄 뒤따라 오르는 몇몇 팀을 마주했지만 혹시 이런 지갑을 보았냐고 묻기조차 구차스러웠다. 아니, 그럴 기분은 더욱 아니었다. 삼릉 솔숲 사이를 지나지만 올라갈 때 보았던 소나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삼릉은 더 이상 힐링 공간이 아니었다. 조급한 마음은 오직 지갑 생각뿐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까지 달리다시피 내려왔다. 먼저 내 차 주변부터 살폈다.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심사 애써 감추고 차 문을 열었다. 운전석 시트 앞뒤를 핸드폰 손전등으로 밝혀보았지만 여기에도 지갑은 없었다. 뒤트렁크도 열고 샅샅이 뒤집어 보았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호텔주차장으로 다시 가야하는가.’
‘그 사이 누가 주워갔으면 어찌할 것인가.’
‘이대로 지갑 찾기를 포기하고 분실신고를 해야 하는가.’
분실 이후의 복잡한 시나리오가 뇌리에 겹치고 쌓인다. 매운 바람에도 얼굴은 후끈하게 열이 올랐다. 지갑을 찾기에서 포기로 넘어가는 고민 단계는 길지 않았다. 분실신고 하기로 결정하니 좀 여유가 생겼다. 분실신고 전에 바짝 마른 입술부터 따끈한 커피로 적시고 싶었다. 그제야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느껴졌다. 보온병을 꺼내려고 배낭의 지퍼를 열었다. 배낭 속의 보온병을 꺼내고 배낭 바닥 어디에 있을 커피를 찾았다. 쉽게 찾지 못해 손을 넣어 내용물을 다 끄집어 내려는데 커피봉지 대신 익숙한 촉감이 납작한 모양이 손바닥만한 크기가 잡히는 것이 아닌가. 내 정신을 빼놓고 애태우던 바로 그 지갑이었다.
‘아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반가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안도감보다는 허탈감이 더 컸다.
‘등에 업은 애기 삼 년을 찾는다’는 속담은 바로 나를 두고 나온 말이었다. 지갑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찾지 못한 것이다.
불과 한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련의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보았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는 가운데 문제의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배낭 속에서 장갑을 꺼내 주머니에 넣다가 때마침 아내가 건네주는 선글라스를 받아들었다. 그 때 주머니 속 지갑을 만지고 있었나 보다. 선글라스를 쓰기 위해 주머니에서 만지고 있던 지갑을 꺼내 무심코 배낭으로 던져 넣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듯하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조차 애매하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지갑을 배낭에 넣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등산 중에는 지갑이 필요 없기 때문에 배낭 속에 안전하게 간직하고 싶은 무의식의 작용이었으리라.
산에서 내려오기 전 배낭을 뒤질 때는 배낭에 붙은 주머니들만 뒤지고 정작 주머니가 아닌 가운데 몸통에는 손을 넣지 않았다. 배낭바닥에서 ‘나 여기 있다.’는 지갑의 소리를 세심하게 귀담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지갑의 소리 없는 무게를 감지하지 못한 불민함, 탓해서 어찌하리.’ 그런다고 달라질 게 하나 없는데..... 차라리 지갑 속의 돈을 잃어버렸더라면 이런 자괴감은 없었을 텐데......
학창시절에는 ‘관동별곡’이니 ‘산정무한’을 막힘없이 암기해서 총기 있다는 칭찬도 들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출석부 순으로 이름은 물론 심지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점수까지도 기억해 주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유적지에 대한 소소한 디테일과 기다란 지명이나 복잡한 인명 정도는 가볍게 재생하는 자신감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다. 남달랐던 그 암기력과 기억력이 이제는 띄엄띄엄 내지는 가물가물하다.
근육이 약해지고 얼굴 주름이 깊어지는 육체의 노화보다 암기력과 기억력이 저하되는 두뇌의 노화가 더 슬프다. 기억 장애가 나를 아프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이름이 입 안에서 뱅뱅 돌기만 할 때, 운전을 하는 중에 익숙했던 길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 읽고 있는 책장의 앞 페이지 내용이 백지화될 때,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잠시 우두커니가 될 때, 나는 절망한다. 이러다가 ‘내가 나를 통째로 잊을 날이 오지 않을까.’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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