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록재 술마루에 다반향초란 목각작품이 있다. 삶의 오묘한 이치가 담긴 화두이다.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수류화개)
찻잎이 반쯤 자라야 차향이 생기듯, 찻물이 반쯤 끓어야 첫 향기를 내듯,
고요히 앉아 수행할 때, 오랫동안 아무 것도 없다가 차가 반쯤 끓을 때처럼 문득 코끝에 같은 향기와 같은 깨달음이 온다.
'수류화개(水流花開)'는 불교의 깨달음이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의 선시
萬里靑天(만리청천) 만리에 펼쳐진 푸른 하늘에
雲起雨來(운기우래) 구름이 일어나더니 비가 오네
空山無人(공산무인) 텅 빈 산에 사람이 없는데
水流花開(수류화개) 물이 흐르더니 꽃이 피네
풀이
만리에 걸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구름이 일어나더니 비가 오네 (멀리까지 구름 없는 하늘 → 구름 생성 → 비가 내림)
텅 빈 산에는 사람이라곤 자취도 없는데
물이 흐르더니 꽃이 피네 (사람이라곤 없는 텅빈 산 → 물이 흐름 → 꽃이 핌)
없음이 없음이 아니고, 있음이 있음이 아니로구나( 無에서 有가 생겨난다)
'茶半香初(다반향초)' 란 무엇인가?
없음에서 있음이 생기는 자연의 묘한 이치다.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다반향초) 앉은 자리 없던 차향기가 문득 나타나듯,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수류화개) 봄날에 없는 데서 물 흘러 꽃이 피듯,
無에서 有로 나아가는 경지다.
추사의 이 대련은 불교의 무유론(無有論)이며, 선시(禪詩)의 한 경지다.
조물주도 자연의 흐름을 운행할 때, 수류화개로 펼친다.
바로 전혀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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