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谿山無盡(계산무진)
볼수록 절묘한 神筆
높은 산 깊은 계곡
구불구불 맑은 물
띄엄띄엄 웅덩이
세찬 물방울
이리 튀고 저리 튀고
글씨 안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소리 있다
자획마다 억양 있고
글자 사이 흐름 좋다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을 추니
이름하여 먹물 4중주
글씨로 쓴 그림인가
그림으로 그린 글씨인가

"계산(溪山)은 물이 흐르는 생명산이다."
추사는 계산(溪山)을, 고자(古字)인 계산(谿山)으로 썼다. 글씨의 옛맛을 살리기에 적절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계(谿) 자가 지닌 형상적인 측면이다. 이 글자에는 오른쪽에 산골짜기가 있고 왼쪽에 시내가 흐르는 형상인지라,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과도 같다. 산골짜기에 물이 흐르고 있는 산이 '계산'이다.
계산(谿山)은 그냥 산과 어떻게 다른가. 서울 남산처럼 물이 말라버린 암산(巖山)이나 갈산(渴山)도 있다. 산이 깊어 계곡이 있고 늘 물이 촉촉하게 흐르는 것이라야 계산이 된다. 계산에는 나무들이 무성할 수 밖에 없다. 나무들은 뿌리로 흙과 물을 붙드는 힘을 지녔다. 그러니 다시 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물이 많은 산은, 산세(山勢)가 깎이는 법도 없고 지형이 허물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나무들이 산을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이야 원래 생명이 없는 땅덩이일 뿐이지만, 나무들이 산의 생명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이 있는 산이라야 오래갈 수 있다."
'물'은 한 나라의 사상과 철학과 도의와 인재와 산업과 상업과도 같다. 삶의 격을 이루고 국가의 기풍을 이루는 이런 것들이 유통되어야 나라가 산다. 조선이란 나라가 왜 망했는가. 탐욕과 어리석음과 갈등과 분쟁이 빚은 결과이다. 인성(人性)과 가치가 말라버리면, 마른 산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사람들아, 이 나라엔 물이 제대로 흐르고 있나'
추사가 계산초로 김수근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도 실상은 그것이었다. 세도가로 그렇게 권세를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에 가치와 창의와 공생과 인의(仁義)가 유통되어야 망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으니, 좀 정신차리라는 뜻을 슬쩍 외삽해놓았다. 산에 물이 있어야 생명의 다함이 없다. 이 말만큼, 세상의 사리(事理)를 직핍하고 있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출처 : 더뷰스(http://www.thevi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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